아내여 사할린에 살아 있소|무소식 24년 광복절에 날아 온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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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꼬박 9년 걸려 「광복의 날」에 날아온 그리운 편지였다. 해방전 사할린 지방에 징용으로 끌려 간 남편을 기다리기 스물네해. 대구시 동인동2가251 박단금 여인(46)은 지난 12일 적성국가인 소련에서 일본을 거쳐 꼬박 9년 걸려 날아온 남편 설말봉씨(55)의 편지를 받고 감격에 겨워 울었다. 설씨는 『살아있다』는 소식을 알린 이 편지에서 사랑하는 그의 아내에게 『편지야 가거라, 날아서 가거라 아내가 기다린다』는 간절한 내용을 구절마다 적었다.
설씨는 결혼 1년만인 43년 일제의 징용에 끌려갔다. 태평양전쟁을 벌인 일본이 결정적으로 패배하고 있을 무렵 박 여인은 신작로 저쪽으로 사라져 가는 남편을 만삭의 몸으로 먼 발치로 지켜본 것이 마지막.
남편이 일본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던 날 박 여인은 첫딸이자 막네딸이 되어버린 문자양(26)을 낳았다. 그때 남편의 주소는 남화태본두군황정탄산시.
그러나 해방은 박 여인에게 오히려 슬픔을 안겨주웠다. 마을에서 학병이나 징용 갔던 사람들이 잇달아 돌아왔지만 남편 설씨는 돌아오기는 커녕 소식마저 끊겼다. 사할린은 2차대전후 적성국가인 소련 땅이 됐기 때문이었다. 시아버지의 3년상을 치른 후 박 여인은 농촌인 고향(경배 청도읍 원정동)을 떠나 대구로 이사했다.
대구 전매청공원으로 취직한 박 여인은 딸을 학교에 보내면서 일본 천엽현에 사는 친척에게 남편의 소식을 들었다. 주위에서『어떻게 청상과부로 늙어 가느냐 개가하라』는 빗발 같은 권고도 뿌리치고 남편이 살아서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그동안 외딸 문자양을 대학까지 졸업시켜 시집까지 보냈다. 그러던중 지난 12일 느닷없이 일본에서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혹시 남편의 편지일까 가슴 설레면서 기도까지 하고 겉봉을 뜯었다.
『편지야 빨리 가라… 그 옛날 경제적인 고통 속에 불민한 나를 기다렸던 고통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막아 있고 이런 나의 미약한 문장으로 어떻게 정신 고통을 기록할까. 아내여 감사합니다. 문자를 고이 길러 문화와 과학의 길에 인도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 기쁜 웃음을 웃을 수 있다오. 고향을 멀리 두고 부모 처자를 어찌 잊겠소! 고생을 하고 고통해 온 지난 경험으로 더욱 큰 용기를 내어 서로 만날 희망을 안고 살아갑시다….』박 여인은 단숨에 내리 읽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편지 얼굴도 모르는 딸에게 보낸「아버지라 불러 볼 사람 없어서 한숨 짖는 문자를 생각하면 가슴아프다』는 내용의 편지와 동봉한 사진을 보고 모녀는 그만 감격 끝에 통곡하고 말았다. 이 편지의 소인은 1만60년l월18일자 소련「사할린」에서 찍혀진 것으로 일본에서 중계되기까지만 9년이 걸려 박 여인의 손에 들어왔던 것이다. 박 여인은 지금 남편이 멀지 않아 돌아오리라는 신념 속에 살고 있다. 박 여인은 15일 집 앞에 태극기를 계양하면서 『나라에서 사할린 교포를 빨리 구출해서 남편을 돌아오게 해줄 것』이라 희망에 넘쳐 말하고 있었다.<대구=최순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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