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응원문화의 두 풍경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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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나를 열광시키는 것 중 하나다. 지난 주말에도 소파 끝에 걸터앉아 윔블던 테니스대회 중계를 보며 앤디 머리 선수를 새벽 1시까지 응원했다. 런던에 있는 관중과 똑같이 경기 매 순간을 긴장감에 휩싸여 지켜보았고, 머리 선수의 승리로 영국이 77년간의 기다림 끝에 윔블던대회에서 우승을 한 순간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2011년 한국에 온 이후 난 영국과 한국의 스포츠 경기 응원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종종 야구경기를 보러 잠실을 찾았고, 최근엔 한국 대 우즈베키스탄의 월드컵 예선전을 보러 상암동 경기장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두 나라 스포츠팬들의 차이점에 놀라곤 한다.

 우선 남녀 비율의 차이가 눈에 띈다. 영국 스포츠 경기의 관중은 대부분 남성이다. 낮고 걸걸한 남자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퍼지고, 남자화장실 앞엔 긴 줄이 늘어서는 반면 여자화장실은 기다릴 필요가 없을 정도이니까. 그런데 한국에선 스포츠 경기장의 남녀 비율이 동률에 가깝다. 최근 동료들과 두산베어스팀의 야구 경기를 관람하러 갔는데, 여성 동료들의 수가 남성보다 두 배나 많았다. 이렇게 여성팬이 많으면 친근한 스포츠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팀 응원 구호를 외칠 때 여성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그런데 왜 영국에선 축구·럭비 경기를 관람하는 여성의 수가 적은 걸까? 아마 스포츠 경기의 적대적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국에선 상대팀과의 경쟁심이 굉장히 치열한 경우가 많다. 물론 대부분의 경기에선 ‘친근한 장난’ 수준 정도에 그치지만 때론 상대팀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과 언어 폭력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나는 영국 스포츠 경기의 열정과 격렬함을 좋아하지만 때로 지나치게 격앙된 분위기는 남녀 관중 모두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고 본다. 어린이 관중에게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처럼 영국도 가족석과 가족 티켓이 따로 있지만 영국 부모들 중 일부는 열기가 넘치다 못해 펄펄 끓는 냄비 같은 스포츠 경기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매너와 예의, 그리고 통일된 안무에 맞춰 율동을 하는 응원 방식도 한국의 경기 관람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산 대 LG 경기를 보러 갔을 때 얘기다. LG응원단이 노래를 부를 때 두산팬들은 조용히 앉아 침묵을 지키는 모습과, 거꾸로 두산팬들의 응원 순서가 되자 LG팬들이 조용히 있는 것을 봤다. 내겐 흥미롭고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영국에선 상대팀이 응원할 때면 그 소리에 뒤질세라 더 목청을 높여 응원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도 영국에서 종종 상대팀 응원 소리보다 더 큰 소리를 내려는 팬들을 따라 하려다 성대를 혹사하곤 했다. 한국에서 응원할 때도 종종 그렇게 하고 싶지만 한국에선 즉흥적이고 개인적인 돌발행동은 자제되는 분위기인 것 같다.

 한국 관중이 경기 관계자들에게 보이는 존경심도 내겐 경이로우면서도 혼란스럽다. 때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심판의 판정에 대해서도 한국 팬들은 평정심을 정말 잘 유지하는 것 같다. 고백하건대 나는 영국에서 내가 응원하는 팀에 불리하고 애매한 판정이 내려지면 자리에서 펄쩍 일어나 거친 말을 쏟아낸다. 하지만 한국 팬들은 반응을 자제하는 것 같고, 이것이 경기장 분위기를 친근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 같다.

 영국 글래스고의 햄던공원에 앉아 ‘타탄 군(Tartan Army: 스코틀랜드의 열성 축구팬들을 부르는 별명)’의 일원으로 열정적인 응원을 펼칠 때 나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설 정도로 짜릿한 소속감을 느낀다. 하지만 한때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린 이 나라의 조용한-때론 지나치게 일관된 안무가 있는-응원 문화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