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세계적 육종학자|우장춘박사 10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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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는 10일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육종학자였던 고우장춘박사의 1주기. 이날 하오 2시 고인을 추모하는 후배와 제자들이 수원시 여기산록에 있는 묘소에 모여 10주기 추도식을 갖는다.
우박사는 1898년 일본 광도에서 출생하여 23세때 동경제대 농학실과를 졸업했으며, 잠시 일본농사시험장에 근무하다가 37년에는 모교인 동경제대에서 농학박사학위를 얻었다. 그후 일본경도용정연구농장장으로 있다가 50년 한국의 농업발전을 위해 귀국한 이래 59년 영면하기까지 만10년간 한국에서 활약했다.
우박사가 대학을 나와서 이룩한 첫 연구는「피튜니어」라는 꽃을 홀겹꽃에서 겹꽃으로 만들어낸 일이다. 그때만해도 1백% 겹꽃이되는 종자는 있었는데 우박사의 힘으로 그것이 세계 최초로 가능해졌다.
그러나 우박사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30년대에 부화십자화과작물(무우·배추등)의 염색체를 상세하게 관찰, 비교하여 특이한 신종을 합성해낸 연구때문이었다.
고인을 지도교수로 모셨던 원자력청 방사선농학연구소의 한창렬박사에 의하면 우박사의 동연구는 그 뒤 전세계에서 가지를 쳐서 크게 발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유전학 교과서와 육종학교과서에서는 우박사의 논문이 반드시 인용되고 있을 정도로 그의 연구는 훌륭한 것이라고 한박사는 강조한다. 그러나 우박사가 씨없는 수박을 만들었다는 것은 와전이고 다만 그가 일본서 귀국했을 때 씨를 가져왔을 뿐이라고 한박사는 지적.
그는 귀국후 주요채소종자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품중에 걸쳐서 계통분리에 착수하고 순도 높은 계통의 육성과 계내 및 계간교배에 의하여 실용성 있는 원원종(연간6두) 및 원종(60석)을 생산하고 채종체계의 확립과 기술의 지도로 55년부터 국내수요를 자급자족케하여 우라나라가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특수품종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외국산종자의 수입을 금지케했다.
우박사의 부인과 자녀들은 현재 일본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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