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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논단] 폭탄만이 만능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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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영국의 조지 캐리 전 캔터베리 대주교는 최근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에게 "왜 미국은 '하드파워'에만 의존하고 '소프트파워'를 도외시하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하드파워가 군사적 위협이나 경제적 회유책을 동원해 상대 국가를 자신의 뜻대로 만드는 압박 방식이라면, 소프트파워는 상대방을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미국으로선 소프트파워를 통해 다른 나라를 설득만 할 수 있다면 '채찍'과 '당근'에 들어가는 비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 미국의 진정한 힘은 그들의 문화와 사상, 그리고 다른 국가들의 입장을 고루 헤아리는 정책에서 비롯된다.

파월 국무장관은 캐리 전 대주교에게 "하드파워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미국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를 옹호한다. 누차 밝힌 바와 같이 미국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소프트파워를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에 회의론자들은 "아무리 소프트파워의 장점이 많다고 해도 오늘날 테러와의 전쟁에서는 별 효험이 없다"고 지적한다. 오사마 빈 라덴이나 사담 후세인은 미국이 소프트파워를 통해 끌어들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오직 군사적 응징만이 이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살펴봐라. 미국은 정교한 폭탄과 특수장비로 알 카에다를 무차별 공격했지만 전세계 60여개국에 걸쳐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이들의 추종자들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테러와의 전쟁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온건주의자들 간 내란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서방 국가들은 이슬람 내 온건파들이 승리를 거둬야만 승리할 수 있으며, 이는 바꿔 말하면 온건주의자들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 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미국 내 매파들은 하드파워를 적절히 구사하면 이들 온건파 이슬람주의자들을 끌어 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1991년 걸프전이 끝나고 중동에서 미국 내 위상이 올라갔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당시 걸프전은 유엔의 단결된 힘으로 치러진 공동작전이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미국이 대연합의 리더가 돼 유엔의 이름으로 이라크에 대해 압박을 가할 때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의 파급효과란 엄청난 차이가 난다.

미국은 다국적군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끝까지 경주하는 한편 이라크를 보다 다원적이고 안정적인 사회로 이끌 수 있도록 하는 기구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면 효율성에선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정통성이라는 면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은 갈등요인이 없어도 꾸준히 제3세계 국가들과의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으로부터 4백여년 전 마키아벨리는 "애정의 대상이 되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이 두가지를 모두 갖추는 게 최선이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미국은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를 동시에 겸비하는 게 옳은 길이란 점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이다.

정리=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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