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교양] '폭풍의 한가운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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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한가운데/윈스턴 처칠 지음, 조원영 옮김/아침이슬, 1만3천9백원

윈스턴 처칠(1874~1965.사진). 육군 사관학교 출신의 군인이자 영국 총리를 지낸 정치가였으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문필가이자 아마추어 화가. 후세의 사람들이 전범으로 삼을 만한 수많은 연설과 일화를 남긴 인물이다.

책은 처칠이 1924~31년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32년에 처음 단행본으로 출간돼 지금까지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자신을 우스갯거리로 만든 시사만화를 익살맞게 비판하는 '시사만화와 만화가', 보수당에서 자유당으로, 다시 보수당으로 당적을 바꾼 과정을 의연하게 해명한 '정치인의 지조', 15차례 출마해 열번 당선되고 다섯차례 떨어졌던 국회의원 선거의 피곤함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선거 이야기'등 흥미진진한 에세이 20여편을 실었다.

IRA를 창설한 아일랜드 독립투쟁의 영웅 마이클 콜린스와 아일랜드 자치를 놓고 협상을 벌인 부분을 보자.

-콜린스는 내게 비난을 퍼부어댔다. "당신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를 추적하고 있더군요. 게다가 아주 내 목에 현상금까지 걸어놓고 말이요." "잠깐." 나는 말했다. "당신만 쫓기는 것이 아니요." 그리고 나는 액자에 넣어 보관해오던 나에 대한 보어인들(남아프리카 전쟁의 상대방)의 현상수배 포스터를 보여주었다. "어찌 되었든 5천파운드면 괜찮은 것 아니오?. 나한테는 생사불문하고 25파운드밖에 안준다지 않소?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는 한참 동안 포스터를 들여다 보더니 배꼽을 쥐고 웃음을 터뜨렸다. 분통이 눈녹듯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일랜드 조약을 마무리한 대목에선 묵직한 통찰력이 배어나온다.

-적과의 투쟁은 끝이 났다. 이제 남아있는 문제는 자신과의 투쟁 뿐이다. 그러나 자신과의 투쟁만큼 어려운 싸움도 없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역사는 때때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 바로 눈앞에 열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훨씬 나아 보이는 해결책은 그대로 내버려둔 채 그토록 느린 속도로 수많은 좌절을 겪어 가면서 한걸음 한걸음 힘들게 전진해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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