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예비타당성 조사가 뭔가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일러스트=강일구]

Q 선거에 나선 정치인은 유권자들에게 이런저런 일을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기간에도 후보들이 전국을 돌며 지역 곳곳에서 “기찻길을 놔주겠다” “병원을 세워주겠다”는 등의 약속을 했죠.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지역 공약 사업은 167개입니다. 지난주 기획재정부는 이들 사업에 대한 이행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예비타당성 조사가 완료된 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업은 뒤로 미루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약속이라도 타당성이 떨어지는 사업에는 국민의 세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게 예산 편성권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입장인 것 같습니다. 반대로 해당 지역 주민과 정치인은 불만이 많겠죠. 이번 틴틴경제는 정부가 강조한 예비타당성 조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A 무슨 일을 하든 들이는 노력과 돈에 비해 그 효과가 시원찮을 것 같으면 그 일을 하지 않는 게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습니다. 정부가 하는 사업에서도 이 원칙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돈·노력이 들어가는 양과 그 효과를 사업 시작 전에 비교하는 정부 작업, 그것이 예비타당성 조사입니다.

1999년에 도입, 2007년부터 의무화

 예비타당성 조사는 1999년에 도입됐습니다. 이 업무를 다루는 사람들은 줄여서 ‘예타’라고 흔히 부릅니다. 2007년부터는 정부가 큰돈을 써야 하는 사업을 하기 위해선 꼭 예타를 거치도록 못박았습니다. ‘큰돈 쓰는 사업’은 사업비가 500억원이 넘고 이 가운데 300억원 이상을 정부가 대는 경우입니다. 이 사업에서 예타를 거치지 않으면 사업 시행 결정 자체가 무효화될 수도 있습니다.

 예타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도 사업 타당성 조사는 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타당성 조사를 하더라도 ‘이 사업은 반드시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죠. 또 지금처럼 ‘돈을 들이는 만큼 경제효과가 있는지’ ‘공익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지’ 등을 따지는 조사가 아니었다고 해요. 예를 들어 ‘A 마을과 B 마을을 잇는 다리를 짓는데 기술적으로 가능한 건가’를 알아보는 절차 정도였답니다. 그래서 경제성이나 공익적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사업들이 무리하게 추진되는 부작용이 있었어요. 우리가 내는 세금이 줄줄 샜다는 얘기죠.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예타입니다. 기획재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예타는 어떤 사업을 할지 말지에 대해서만 판단하는 게 아닙니다. ‘다른 대안은 없는지’ ‘다른 사업보다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건지’ 등도 점검합니다.

 국가 사업의 추진 단계는 ‘예타→본 타당성 조사→설계→보상→착공’입니다. 가장 처음 단계인 예타는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업에 들어갈 돈을 사전에 막는 효과를 노린 제도입니다. 당연히 예타는 객관적으로 실시해야겠죠.

그래서 예타 조사의 표준지침이 마련돼 있습니다. 사업 분석 방법의 표준화, 즉 이른바 ‘예타 교과서’에 나온 대로 조사해 그 결과의 객관성을 확보합니다. 표준지침은 이 사업을 할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을지 선택하거나 A와 B 사업 가운데 어떤 일을 먼저 시작할지 결정하도록 돕는 역할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한정된 나랏돈을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사업에 쓰도록 해 나라 살림을 건실하게 만든다는 게 예타 제도의 목적입니다.

타당성 없는 사업, 사전 차단 효과

예타 조사를 실제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은 틴틴도 있겠죠. 간략히 알아봅시다. 정부가 사업을 계획하면 그 사업의 목적·실행방법 등을 담은 개요를 만듭니다. 이 개요와 사업 관련 기초자료들을 검토하는 게 첫째 단계입니다.

 2단계는 경제성 분석입니다. 경인고속도로를 지하차도 형식으로 만드는 계획을 생각해봅시다. 여기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용할지’(수요), ‘이용자들이 얻게 되는 시간 절감 효과는 어느 정도인지’(편익), ‘이 사업에 드는 돈은 얼마나 될지’(비용) 등을 파악합니다. 비용보다 편익이 크다면 통과입니다.

 3단계에선 조사 내용이 구체화됩니다. 우선 해당 사업 지역에 생길 경제 파급효과를 분석합니다. 기차역이 생기면 그 주변에 사무실·수퍼마켓 등이 들어설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더 몰리고 일자리도 생깁니다. 그런 효과를 분석하는 겁니다. 또 지역 낙후도에 대해서도 평가합니다. 비록 경제성은 떨어지지만 낙후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는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재원 조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업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린다면 그만큼 이 사업에 필요한 예산을 받기 어려워지겠죠. 정부 입장에서 돈은 없지만 꼭 필요한 사업이 있다면 기업 등의 자금을 끌어들여 사업을 시행할 수도 있습니다. ‘민자 사업’이라는 말 들어보셨을 거예요. 정부 돈이 아닌 민간 자본으로 실시하는 공공 사업을 말합니다.

이 밖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있는지도 중요한 분석 사항입니다. 과도하게 숲을 해치거나 강·바닷물을 더럽힐 수 있는 사업은 해선 안 되니까요.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게 3단계입니다.

 4단계에선 1~3단계 결과를 모아 전문 계산기법을 이용해 사업의 점수를 매깁니다. 계산 결과 1점 만점에 0.5점 이상이 나오면 보통 사업을 해도 좋다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높은 점수를 받은 사업일수록 다른 사업에 비해 예산을 받기가 쉽습니다.

4단계 심사점수 높을수록 예산 받기 쉬워

 하지만 예타에서 높은 점수가 나온다고 해서 그 사업이 무조건 좋다는 뜻은 아니에요. 숫자로 평가하는 제도의 한계일 수 있죠. 예를 들어 강물을 맑게 하는 사업을 할 때 ‘강물이 맑아지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돈으로 환산하거나 점수를 매기기가 힘들 테니까요. 또 산사태를 막기 위한 정비 사업을 할 경우 얼마나 많은 비가 내릴 때까지 산사태를 막을 수 있을지를 예측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든 대규모의 나랏돈이 들어가는 사업에는 예타 과정에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낸 세금을 쓰는 사업을 하기 전에 그 효과를 따져보는 예타 제도가 있다는 것은 다행입니다. 하지만 예타 역시 그 객관성에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도 해 드렸어요. 오늘 예타에 대해 공부한 김에 틴틴 여러분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정부 사업이 적절한지 아닌지 관심 갖고 지켜보길 바라요. 국민으로서 권리이자 의무니까요. 그리고 또 틴틴 여러분의 용돈도 쓸 때마다 예타를 거친다면 지금보다 더 아낄 수 있지 않을까요.

최선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