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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의 풍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결투」하는 광경은 요즘도 종종 구미에서 볼 수 있다. 작년11월「아르헨티나」에서는 해군제독과 한신문의 편집국장사이에 「펜싱」이 벌어 졌다. 신문에서 전해군 참모총장이던 「베니그노·바렐라」제독을 맹렬히 비난한것이 「결투」신청의 동기였다. 「라·아우토노미아」지 편집국장도 선선히 웃옷을 벗고 나섰다. 제독은 대머리에 백발이 희끗희끗한 노신사. 편집국장 「비글리 에리」씨는 검은 두발을 한 정력적 40대.
그러나 승부는 그처럼 쉽게 끝나지 낳았다. 제독쪽에선 가슴과 왼쪽귀에 상처를 입고, 국장쪽에선 왼쪽 뺨에 송곳자국이났다. 이들은 다음날의 제2결투전을 약속하고 악수. 그 후문은 아직없다. 서로 용감성을 찬양했다는 얘기로 보아 화해가 되었을 것도 같다.
이번엔 노시장과 국회의원의 결투가있다. 「프랑스」 「마르세유」시의 시장 「가스통· 드페르」와「드골」파 국회의원「르네·리비에르」와의 칼 싸움이다. 이들은 의회의 시정감사에서 서로 입씨름을 하고난뒤, 결투로 결말을 내기로 한 것이다. 「리비에르」의원쪽에서 먼저 싸움을 제의했었다.
결투는 「파리」교외「뇌일리」숲속에서 벌어졌다. 「노·타이·샤쓰」바람으로 칼을들고, 겨냥을 한 모습이 그때 (67년봄)「타임」지엔가 사진으로 났었다. 공격·수비, 다시 공격하는 품이 자못「에네르기쉬」하다. 마치 무슨경기라도 하는듯한 기분들이다. 4분만에 승리는 시장쪽에서 차지했다.「드페르」의원은 오른쪽팔에 두곳이나 상처를 입었다. 승부가끝나자 두신사는 어깨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었다. 혈전을 벌이던 두「복서」가 「공」이 올리자 함께 손을 들어 웃는 모습과 다름이 없다.
「결투」는 「페어·플레이」의 약속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어느 한쪽에서 뒤통수를 치거나 상대방의 발가락을 밟으면 결정적인 타격을 줄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로 하는 약속을 암암리에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격의 긍지이며, 양식의 발로이다.
정치는 더구나 말할것 없다. 그것은 힘의 기교도, 권력의 그것도 아니다. 양식과 인격의 총화위에서 서로 「페어·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이것의 전제없다면「아나키」나 다름없지 않겠는가.
설령 사감이든, 아니면 정치적보복이든간에, 상대방의 뒤통수를 치는 수법은 야만적이다. 당당히 결투를 신청하는 정치풍토란 우리에겐 불가능한가. 상대방이 떨어뜨린 칼을 집어주는 그「페어·플레이」정신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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