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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서 돌아온 박정환소위 어머니의 수기|어릴 때부터 실종선수|내 아들은 씩씩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죽은줄만 알았던 아들 정환을 다시 찾았습니다. 정환은 어릴 때부터 실종된 일이 많아 나의 애를 태웠지만 그때마다 개성이 강한 덕분에 찾았습니다.
정환이는 만주에서 낳았습니다. 큰아들이라 너무 귀엽게 키운 탓인지 코와 침을 많이 흘려 국민학교 입학 때까지 턱받이를 달아주어야 했고 코장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쏘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찾아 나설 때가 많았습니다.
할아버지 회갑으로 세살짜리 정환이를 데리고 고향에 갔다오다 정환이를 잃어버렸을 때도특징을 「코 흘리는 아이로」 찾았읍습니다.
포항으로 이사한 후어린 정환은 엄마 몰래 낚시질 나갔다가 밤12시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온 가족이 포항일대를 온통 뒤진 끝에 부두에 가서 정환을 부르니 바위틈에서 그제야 나오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6·25때 포항시중앙동에 있던 집이 타 한동안 어느 낡은 창고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하루뒤 그 창고에마저 적탄이 떨어졌습니다.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을 헤치고 들어가려고 했으나 아빠가 말렸습니다. 『정환아』하고 소리질렀으나 정환은불타는 창고에서 얼굴을 내밀다 도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나는 아들과 함께 죽기로 결심하고 뛰어 들어갔습니다. 정환이는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태연하게 서 있었습니다.
아빠는 정환이에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말렸지만날마다 씩씩해 보이는 아들에게 정신만 똑바르면 된다고 믿게되었습니다.
땀이 밴 도복을 둘러메고 집에 돌아와 땀을 쭉짜보이며 『땀을 흘려야 성공한다』면서 으쓱해 보일 때 미덥고 귀여웠습니다.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정환을 보고 나는 만주벌판의 기질이 드디어 나타난다고 믿고 싶었고 또 믿었습니다.
8년 전 남편을 여의고 살림이 어려워지자 정환이와 차남 수환(서울사대4년)은 늘 머리를맞대고 살림을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두 형제는 나에게 『우리는 어머니에게효도를 다하려하지만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재혼하셔서…』 이런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서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l5일 새벽 묘한 꿈을 꾸었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와 방안을 보니 벽에 흰 편지가 꽂혀 있었습니다. 『정환석방』이란 내용이 분명히 적혀 있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온 집안을 구석구석 뒤졌으나 편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날 상오9시쯤 모방송국 기자가 찾아와 정환이가 석방된다는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18일저녁 김포공항 비행기문이 열리고 정환이 모습이 보이자 나는 들고있던 「백」과 우산을 던지고 뛰어나가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정말 죽은 남편이 돌아온 것보다 더 기뻤어요.
정환을 미국에 유학시키려했으나 이젠 나라의 고마움에 무엇이든 나라에 도움되는 일이라면 거기에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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