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 몰려와 경제 장악 … 위구르족 박탈감이 폭동 불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중국 대륙의 화약고’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새벽 신장 투루판(吐魯番)지구에서 위구르인 시위대가 관공서를 습격하면서 유혈 충돌이 빚어져 35명이 숨졌다. 소요사태는 이틀 뒤 허톈(和田)시로 번졌다. 중국 당국은 무장경찰에 발포 명령을 내리는 등 강경진압에 나서 소요 주동자 18명을 사살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도시들은 모스크가 폐쇄되고 24시간 중무장 순찰이 실시되는 등 사실상 계엄 상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을 국빈으로 맞고 있던 지난달 28일 밤 당 정치국상무위원회 7인 전원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3고(三股)’ 세력, 즉 국제테러리즘과 민족분열주의, 종교적 극단주의 세력에 의한 테러로 규정하고 권력 서열 4위의 위정성(兪正聲) 전국정협 위원장과 멍젠주(孟建柱) 중앙정법위 서기, 궈성쿤(郭聲琨) 공안부장 등을 우루무치(烏魯木齊)로 급파했다. 멍젠주 서기는 29일 오후 우루무치 도심에서 1만여 명의 무장경찰부대를 동원, 반테러 궐기대회를 열고 무력시위를 벌였다.

종교·언어 달라 중국화 거부하고 저항

  중국 수뇌부가 긴장하고 있는 배경에는 사상 최대의 유혈사태로 치달았던 7·5 폭동 4주년을 코앞에 둔 시점이란 사실도 작용했 다. 2009년 7·5 폭동 때는 197명이 숨지고 1700명이 부상을 입었다. 중국 당국의 강경 탄압 실상이 알려지면서 베이징 올림픽을 갓 치른 중국의 국가 체면에 손상을 입히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신장은 단순한 소수민족 자치구 이상의 중요성을 가진 지역이다. 신장자치구는 중국 국토의 6분의 1을 차지한다. 중국 최대의 석유·천연가스 매장 지역이고, 석탄·철광석 매장량도 중국에서 둘째다. 신장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건 지정학적 위치다. 중국 국경선 전체의 4분의 1이 신장자치구에 걸려 있다. 신장은 러시아·인도·중앙아시아 3개국 등 8개국과 접한다. 이 때문에 신장의 분리독립을 막고 안정적으로 통치해야 한다는 전략적 절박함이 있다. 티베트 등 다른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운동에 미칠 도미노 효과도 중국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중국 정부가 작은 소요에도 초강경 진압으로 대응하는 이유다.

 신장에서 크고 작은 소요가 끊이지 않는 배경에는 위구르족과 한족 간의 민족 갈등이 작용하고 있다. “신장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신장자치구의 위구르족 주민들은 한족에 대한 박탈감을 갖고 있다. 1949년 신(新)중국 건국 당시 6%에 지나지 않았던 신장 자치구의 한족 비율은 2010년 40%로 증가했다. 한족은 엄격하게 한 자녀만을 갖는 것으로 제한되지만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은 예외를 적용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족 이주 정책이 얼마나 강력하게 시행돼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자치구 수도인 우루무치에선 한족이 절대 다수인 75%를 차지한다.

임금 높은 공직·일자리 한족이 차지

 이는 중국 정부가 신장의 중국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정책적으로 한족의 이주를 유도한 데 따른 결과다. 1962년 란저우(蘭州)와 우루무치를 연결하는 신장철도가 뚫리자 한족이 대규모로 기차를 타고 신장으로 향했다. 대약진운동과 자연재해로 중국 전역이 기근에 시달렸던 59~61년, 문화대혁명 기간인 65~67년 한족 이주가 급증했다. 91년 소련이 무너지자 한족의 신장 공략은 더욱 가속화됐다. 마오쩌둥의 어록을 패러디한 ‘신장에 오지 않으면 훌륭한 한족이 아니다(不到新疆不好漢)’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중국 정부가 이주를 통해 기대했던 동화(同化)나 민족 융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고유어를 쓰고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인과 외지 출신 한족은 통혼(通婚)을 기피했고 거주지역도 따로따로였다. 오히려 정치적·경제적 격차가 심해지면서 민족 간 양극화 현상이 일어났다.

 2000년대부터 본격화된 서부 대개발 덕분에 최근 10년간 신장 경제는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장의 과실은 대부분 한족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지역 개발이 본격화되자 중국 기업들이 대규모로 이 지역에 진출했다. 늘어난 일자리는 대부분 한족의 몫이었다. 한족 경영자들은 위구르족을 채용하는 대신 타 지역의 한족을 데려와 썼다. 홍콩 명보(明報)는 현지 르포를 통해 “위구르인은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구하기 힘들고 설령 취직해도 임금이 낮다”고 전했다. 한족은 공공기관의 간부직을 차지하고 위구르족 엘리트는 하급직에 만족해야 했다. 직업 분포상으로도 한족은 공업·상업, 위구르족은 농업에 종사하는 계층구조가 굳어졌다.

 겉보기에 중국 정부는 이 지역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소수민족 발전계획에 따라 위구르족은 정책적으로 대학 진학이나 공무원 채용 등 취업에서 우대받는다. 지역 빈농들이 타 지역 공장에 취업하는 길도 넓혔다. 이런 사례를 들며 중국 정부는 위구르 주민은 중국 정부에 협조적이란 입장이다. 2009년부터 매년 일어난 유혈폭동은 파키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과 연계를 맺고 있는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과 같은 외부 분열세력의 책동으로 본다.

위구르족은 대부분 농업 종사 하층민

 하지만 ‘진짜 주인을 모르겠다’는 푸념처럼 한족에 대한 위화감과 중국 정부에 대한 불만은 지역 위구르인의 심리 저변에 깔려 있다. 위구르인의 박탈감은 각종 우대정책에도 불구하고 뿌리가 깊다. 신장 지역을 오가는 국내선 항공기의 기내 안내 방송은 중국어와 영어뿐이다. 3시간에 달하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정부 방침에 따라 베이징 표준시에 맞춰 생활해야 한다. 대다수 위구르인이 극단적 분리운동에 직접 행동으로 가담하지는 않고 있지만 언제든 작은 불씨가 큰 소요사태로 번질 수 있을 정도의 잠재적 불만이 위구르인의 가슴 한쪽에서 자라고 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이충형 기자

위구르족 터키어 계통의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 민족이다. 중국 신장과 후난성 일부에 1119만 명, 카자흐스탄에 23만 명 등이 살고 있다. 중국의 4대 소수민족으로 이슬람 수니파에 속한다. 세계위구르의회,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 등 50여 개의 독립운동 조직이 해외에서 활동 중이다. 이들 조직은 푸른색 바탕에 흰 반달과 별이 그려진 국기를 사용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