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즐겨 읽기] 안데르센의 동화 같은 연애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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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즉흥시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김석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580쪽, 1만8000원

전 세계는 지금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 관련 행사로 요란하다. 4월 2일 작가 탄생일에 맞춰 모국인 덴마크에서 대형 콘서트가 열리는 것을 비롯해 연말까지 전 세계에서 3000건이 넘는 기념 행사가 열린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안데르센 관련 저서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이 가운데 '즉흥시인'은 가장 주목되는 책이다. 1835년 나온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안데르센이란 이름을 덴마크 바깥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작품이다.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 새끼' 등 동화에 밀려 우리나라에선 이번에 첫 완역 출판됐다.

소설은 다분히 자전적이다.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줄거리는 작가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얻은 경험에 크게 의지한다. 소설인지 자전적 에세이인지 헷갈릴 정도다.

여하튼 소설은 주인공 안토니오가 이탈리아 전역을 떠돌며 성장하고 사랑하는 이야기다. 그 사랑이 매우 운명적이다. 나폴리에서 만난 눈 먼 소녀 '라라'는 훗날 결혼에 성공하는 '마리아'의 예전 모습이다. 여기에다 로마의 오페라 가수 아눈치아타를 향한 안토니오의 순정이 섞이고, 아눈치아타를 사이에 두고 친구 베르나르도와 삼각 관계에 빠지는 주인공의 고민이 더해진다.

기실 안데르센의 그 유명한 동화들은 동화답지 않은 구석이 있다. 그의 동화는 예쁘게 꾸민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은 대체로 불우하며 비극적인 결말도 많다. 묘사는 사실적이고 사건 전개는 인과율을 거스르지 않는다. 평론가들은 구두공 아버지와 파출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도 못 마친 불행한 유년 시절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그런데 어른용 소설인 이 책이 외려 동화스럽다. 주인공의 사랑이 맺어지는 건 운명이 아니고선 설명이 어렵다. 안토니오와 마리아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는 이탈리아 곳곳의 전설과 역사와 교묘하게 맞물려 있다. 그래서 둘간의 사랑은 전설처럼 안타깝고 아름답다.

손민호 기자

◆ 다른 안데르센 관련 서적

안데르센의 절규(안나 이즈미 지음, 황소연 옮김, 좋은책만들기)는 안데르센의 익숙한 동화를 '잔혹 버전'으로 바꾼 책이다. 예를 들면 인어공주는 왕자님의 행복을 위해 이슬로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왕자 부부를 칼로 찌른다. 저자는 "안데르센 개인의 삶에 사회심리학적 분석을 더해 그의 심리 기저를 분석했다"고 밝혔다.

안데르센과 함께 코펜하겐을 산책하다(울리히 존넨베르크 지음, 김수은 옮김, 갑인공방)는 역사기행서다. 안데르센이 열네살 이후 일흔살에 죽을 때까지 살았던 코펜하겐의 명물이 안데르센의 삶, 작품과 함께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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