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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 만한 전시] 디지털로 환생한 그림 … 명화를 대하는 또 다른 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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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홀바인은 ‘대사들’(1533)을 그리면서 인물 앞에 일그러진 해골을 그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시크릿 뮤지엄’전에서는 그림의 시점을 뒤틀어 해골의 정체를 드러낸다. [사진 예술의전당]

#1.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1888)은 별도의 방에 모셔져 있었다. 방 안에 그림은 걸려 있지 않고 천장까지 온 벽면에 영상을 쏘아 가득 채웠다. 그 영상은 물론 원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관객은 그림 속에 들어간 듯 반 고흐 특유의 재질감을 느끼며 귀뚜라미 소리, 멀리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반 고흐가 그림 그리던 그때 그 현장에 함께한 듯한 느낌을 살린 영상이다. 반 고흐는 이 같은 아를의 밤에 숨어, 파리의 보헤미안적 생활 속에서 피폐해진 영혼에 안식을 얻지 않았을까.

 #2. 라투르의 ‘목수 성 요셉’(1642) 영상에는 땀 흘려 일하는 목수 요셉의 거친 숨소리, 그런 아버지를 비추는 소년 예수의 촛불 든 손(후에 그 손에 못이 박힐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 촛불의 심지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담겨 있다. 음악 없이 간간이 효과음을 섞어 보여주는 이 영상 속 정적은 아비와 아들을 따뜻하게 감싸며, 두 사람 사이에 신이 있음을 전한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시크릿 뮤지엄(Secret Museum)은 원화 없는 명화전이다. 다 빈치부터 반 고흐까지 서양 미술사의 혁신을 이끈 주요 회화들을 디지털 재현을 통해 소개한다. 고성능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를 토대로 애니메이션, 특수효과, 3D, 멀티스크린, 음향을 활용해 작품의 디테일과 숨은 의도를 보여준다. 2010년 파리 프티 팔레(Petit Palais) 미술관에서 열었던 디지털 명화전의 첫 해외 순회다.

 전시는 디지털 시대에 명화를 보는 또 다른 방식을 안내한다. 그리고 전시가 강조하는 게 있다. 고성능 카메라로 근접 촬영한 명화 영상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균열이 눈에 띈다. 곳곳에 금이 간 소년 예수의 복숭앗빛 뺨, ‘페르세포네의 납치’ 속 등장 인물들의 빈 눈동자…. 명작의 가치는 불멸일지 모르나, 하나의 물질로서의 명작은 세월 앞에서 필멸이라는 것. 디지털 복제는 이런 의미를 전달해준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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