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 말바꿈? 두산위브 기부채납 585억 진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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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9일 개관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대구 범어동 범어도서관과 범어네거리 지하에 들어 선 범어지하상가 모습.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범어지하상가. 범어네거리 지하에 위치한 이 상가(72개 점포)는 여느 지하상가와 다르다. 물건을 파는 점포 대신 예술 공간과 영어 거리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상가의 절반가량은 작가들의 작품활동 공간으로, 나머지는 영어 거리로 활용되고 있다. 상가 소유자인 대구시가 분양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용도를 바꾼 것이다. 지하상가는 지하철 2호선 범어역과 연결돼 있다. 동쪽 끝에서 지상으로 나오면 파란색 유리로 된 건물이 보인다. 수성구립 범어도서관이다. 오는 29일 개관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모두 인근 주상복합건물 두산위브더제니스의 시행사인 ㈜해피하제가 만들어 대구시와 수성구청에 각각 기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시설들이 소송에 휘말려 있다. 상가와 도서관 건립 비용을 돌려 달라며 시행사가 대구시와 수성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어서다. 시행사는 범어지하상가와 부설 주차장 건립비 485억원, 범어도서관 부지 매입비와 도서관 건립에 들어간 100억원 등 모두 585억원을 돌려 달라는 부당이득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월 대구지법에 소장을 제출했으며 이달 중 법정 공방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 시설을 지어 기부한 아파트 건설 시행사가 대구시와 수성구청을 상대로 585억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왜 거액의 소송이 붙었을까. 대구시와 수성구청 등에 따르면 시행사는 2005년 두산위브더제니스의 사업 승인과 관련해 교통영향평가 심의를 하면서 지하보도(지하상가)와 도서관을 짓도록 시와 구청이 압박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인근 범어네거리의 상습 차량 정체가 예상된다며 지하상가를 만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파트 건설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회사 측이 부당하게 부담했다는 주장이다. 또 2005년 주택법 개정 때 신설된 ‘주택건설사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시설의 설치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이유로 들었다. 시행사는 서울의 대형 로펌에 사건을 의뢰했다.

 대구시와 수성구도 지역의 유력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고 있다. 시와 구청 측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교통영향평가 때 사전 검토의견으로 지하보도와 도서관 건립을 제시했고 업체 측이 이를 검토한 뒤 용적률을 높이기 위해 수용했다는 것이다. 시와 구청 측은 아파트와 지하철 범어역을 연결하는 지하보도를 만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주민이 늘어날 것이란 취지에서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이진훈 수성구청장은 “시행사 측이 이들 시설을 건립하면 아파트의 가치가 높아지고 용적률에서도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어 자발적으로 동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 관계자는 “시행사가 이들 공공시설을 짓기로 하면서 용적률이 552%에서 780%로 높아졌다”며 “소송 과정에서 누구의 말이 맞는지 드러날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시 공무원이 맡던 법무담당관을 변호사 출신으로 바꾸었다. 앞으로 거액의 소송이 빈발할 것으로 예상해서다. 전재경 대구시 대변인은 “소송에서 질 경우 시 재정에 타격이 큰 만큼 법률 전문가에게 소송업무를 맡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권삼 기자

◆범어 두산위브더제니스=수성구 범어동 법원 옆에 위치한 주상복합아파트. 2005년 착공해 2009년 준공됐다. 사업비는 1조4000억원. 단독주택지 4만14㎡에 지하 7층, 지상 54층짜리 아파트 9개 동(1494가구)으로 구성돼 있다. 당시 주상복합아파트 중 대구에서 가장 층수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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