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기엔 금리 올리면 안 돼 … 한국, 시장에 자금 충분히 공급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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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가 현실이 됐다. 미국의 무한정 돈풀기인 양적완화가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다. 양적완화가 유례없는 선택이었듯 양적완화에서 빠져나오는 것 역시 가보지 않은 길이다. 양적완화 종료는 세계 각지로 풀려나온 돈의 미국 회귀 효과를 낳는다. 그 위력은 이미 입증됐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 의장의 출구전략 신호만으로도 세계 각국 주가는 급락하고, 채권금리는 급등했다. 벌써부터 일각에선 이탈하는 외국인 자금을 붙잡기 위해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금리 인상은 한국 경제 회복세를 꺾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금융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프린스턴대 신현송(54) 교수는 지난달 28일 대담에서 “미국 출구전략으로 위기가 발생해 신흥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때 금리를 올리는 것은 자금경색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지금은 투자자금 유출에 대비한 유동성 공급에 초점을 둬야 한다. 채권 시장에 대한 추가 정책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아시아 최초로 연세대에서 열린 경제동학학회(Society for Economic Dynamics)에 참석차 방한했다.

 ▶성태윤 교수(이하 성)=최근 버냉키의 출구전략 발표가 국제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준이 출구전략 스케줄을 고수할까.

 ▶신현송 교수(이하 신)=연준도 당황했을 것이다. 연준 내부에서도 뒷걸음치는 모습이 역력하다. 출구전략은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앞으로 각국은 미국 출구전략에 어떤 영향을 받을까.

 ▶신=미국으로 본격적인 유동성 회수가 시작되면 국채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약한 고리들이 드러난다. 중국 그리고 재정 여건이 어려운 유럽, 또한 인도·터키·브라질·남아공·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 등 신흥국들이 취약하다. 다만 이번 경우는 위기가 전염된다기보다 개별 국가의 취약 정도에 따라 위기 발생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성=일각에서는 금리 인상으로 투자자금 이탈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한다.

 ▶신=그렇지 않다. 호황 때는 투자자들이 ‘위험 추구’를 하기 때문에 금리를 올리면 자본이 들어오지만, 위기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금융기관 건전성이 악화되면서 자본이 더 빠져나간다. 투자자들의 위험추구채널이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가 있어서 자금이 빠져나갈 때 금리를 올리면 자산가격이 떨어지고, 부채가 커지기 때문에 금융경색이 심화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성=1992년 영국의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 당시 독일 금리 인상으로 영국에 투자됐던 자금이 독일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영란은행이 자본 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렸는데, 결과적으로 영국 주택시장만 붕괴했다. 출구전략기에 어떤 대응이 필요할까.

 ▶신=미국의 출구전략은 불가피하다. 시장 반응에 놀라 다시 유동성을 늘리는 것은 과음한 다음 날에 해장술을 또 마시는 것과 같다. 개별 국가 입장에서는 출구전략이 본격화되기 전에 미리 금융안정 조처를 취하고 위기 가능성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우리나라는 거시안정성 3종 세트(선물환포지션 규제, 외국인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로 충분할까. 추가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신=양적완화 축소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나갈 때는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 거시안정성 정책으로 은행 부문의 신용경색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본다. 다만 (3종 세트는) 채권시장에는 충분한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다. 따라서 채권 시장에 대한 추가 정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지금은 투자자금 유출에 대비한 유동성 공급에 초점을 둬야 한다.

 ▶성=일각에선 미국의 출구전략은 경기회복 신호이기 때문에 대미 수출이 많은 한국 경제에 긍정적이라는 주장도 편다.

 ▶신=출구전략으로 한국 경기가 개선되는 효과는 다소 먼 상황으로 판단된다. 출구전략의 축소와 종료는 일종의 정상화 과정인데, 정상화가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신용경색 가능성은 과거에 비해 줄었지만, 실물경기 위축을 막으며 충격을 완화하는 유동성 공급 같은 조처들을 상황에 따라 적절히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최근 중국에서도 금융경색 문제가 불거졌다.

 ▶신=중국에서는 은행 업무에 제약이 많아 규제를 피해 금융활동을 하는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에 비금융 기업들이 뛰어들었다. 예를 들면 수출 송장을 부풀려 수출액보다 많은 달러를 들여오는 것이 한 방법이다. 또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한 경제특구·주택사업에 해외자금이 유입됐었는데, 부실 소지가 크다.

 ▶성=양적완화 출구전략에 따른 시장 충격에 중국발 경기 위축까지 겹치면, 우리는 금융과 실물 양쪽에서 부담을 안게 된다.

 ▶신=성장을 축소하더라도 부실을 털어내려는 중국 정부의 방향은 옳다. 중국 그림자금융은 2008년 이전에는 없던 것으로, 지금은 제도권 금융과 동일한 규모로 커졌다. 중국의 부실청산은 금융보다는 실물 채널로 한국 경제에 영향을 줄 것이다. 한국은 중간재 중국 수출 규모가 커서 중국 경기침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성= 아베노믹스는 어떻게 전망하나.

 ▶신=아베노믹스엔 큰 약점이 있다. 아베노믹스가 성공하려면 기대금리가 올라가고 장기금리가 올라야 하는데, 이건 재정건전성 악화를 가져온다. 결국 장기금리가 오르기 전에 경기가 살아나야 하는데, 시장가격인 이자율은 순간적으로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장기금리 상승에 앞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어렵다.

 ▶성= 그 같은 모순을 극복하려면 실물경기가 충분히 개선되어 정부가 채무부담을 견딜 수 있어야 하는데, 단기에 이를 가능하게 만들 방법은 환율밖에 없다. 이 때문에 주변 국가에 피해를 주는 엔저 환율 구조가 아베노믹스의 핵심에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신=명목적으로는 (아베노믹스의 핵심이) 환율이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환율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시기가 겹치며 유동성이 빠져나가면서 아베노믹스 성공은 더 어려워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위험추구채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처럼 글로벌 유동성을 공급하는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은 국제금융기관들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춰 위험선호도를 높인다. 국제금융기관들은 자금을 저금리로 조달한 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신흥시장으로 대출을 확대하는데 이를 ‘위험추구채널’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자금이 유입되면 신흥시장의 통화가치가 덩달아 올라가 추가 자금 유입이 가속화된다. 호황일 때는 별문제가 없으나, 자금흐름이 유입에서 유출로 바뀌면 자금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며 신흥시장에서 위기가 발생한다.

◆신현송=금융위기 관련 연구의 권위자.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을 강타한 직후인 2010년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을 지냈다. 그가 제안한 거시건전성 3종 세트(선물환포지션 규제, 외국인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는 한국 경제의 대외 위험 노출을 줄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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