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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몰카 교수 허위진단 의사 '답게 문화'의 실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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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요즘 들어 너무 많고, 너무 잦다는 느낌이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으로 불리는 직업인의 일탈행동 말이다. 많은 이가 그렇듯 나도 지도층이라는 말에 다소 거부감을 갖고 있다. 요새 같은 세상에 누가 누굴 지도한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오랜 노력 끝에 전문지식·덕망이나 권력·영향력을 갖춘 사람이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가르치는 의미에서라면 구시대 유물로만 취급할 것은 아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지난주 이후 언론에 보도된 것만 보자. 영화관에서 유명 사립대 교수가 뒷좌석 여성의 치맛속을 카메라로 찍다가 들켰다. 도망치면서 명함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신분이 드러났다. 한 목사는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20대 여성을 더듬으며 촬영까지 하다 걸렸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비슷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신학대 대학원생이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의사 4명이 술에 취해 시내버스를 발로 차고 행패 부리다 경찰에 입건됐다. 중국인 의료관광 등을 구실로 허위진단서를 끊어준 의사·한의사들도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진작에 유명세가 붙어 있던 어떤 판사는 이웃 주민 승용차 열쇠구멍에 접착제를 바르고 타이어 펑크 내는 모습이 폐쇄회로TV(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여성을 촬영하다 걸린 40대 초반 변호사도 있었다.

 개가 사람을 무는 게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되니, 일단 ‘안 그럴 것 같은 분들’이 저질렀기 때문에 보도가 됐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판사·변호사·의사·교수·목사에 대한 기대를 아직은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희귀해야 마땅한 일이 너무 잦아졌다면 원인이 있을 것이다. 첫째, 판사·의사·목사도 사람인지라 집단 속에 그런 이들이 원래 끼어 있었는데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인터넷이나 CCTV 덕분에 옛날과 달리 쉽사리 들통나고, 영향력을 발휘해 피해자나 수사기관을 구워삶던 시절도 지나갔다. 게다가 “너희도 별것 아니었구나”라며 통쾌함과 관음증을 동시에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 대중이 있다.

 둘째, 이들 직업군이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 그러니까 ‘평둔화(平鈍化)’됐다는 해석이다. 과거의 의사라면 ‘아니 의사가 어떻게’라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감히 일탈을 꿈꿀 생각조차 못했는데, 요새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자신의 성매수 경험담을 버젓이 인터넷에 올린 예비 초등학교 교사도 있지 않았나. 그렇다면 심각하다. 의사답게, 판사답게, 교수답게, 목사답게라는 ‘답게 문화’의 총체적 퇴조 현상이기 때문이다. 위선으로라도 염치를 앞세우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나는 바담 풍(風)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는 속담마저 이제는 ‘나도 바담 풍 할 테니 너도 바담 풍 해라’로 바뀐 것일까.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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