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삶일수록 순수소설 같은 인문학 소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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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월가 금융인에서 전업 작가로 변신한 이창래 교수. “또 다른 종류의 나로 변신하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순수 소설을 읽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재미 교포 작가 이창래(48) 프린스턴대 교수(인문학 및 창작과정)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돈과 재미, 물질을 좇느라 자신이 누구냐는 핵심 질문을 잊고 산다”며 “순수 소설은 바쁘게 사는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삶의 속도를 늦추도록 해 주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달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사장 유현석)의 제46차 KF포럼에서 ‘나의 첫 소설, 순탄치 않은 출발’을 주제로 강연한 뒤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1995), 『제스처 라이프(A Gesture Life)』(1999), 『가족(Aloft)』(2004), 『생존자(The Surrendered)』(2011) 등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다룬 작품을 썼다. 이 소설들은 모두 한국어로 번역됐다. 뉴욕타임스는 2000년 그를 ‘미국 문단의 가장 주목 받는 작가’로 꼽았다. 데이튼문예평화상, 헤밍웨이재단·펜문학상, 아메리칸북어워드, 반즈앤드노블스 신인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 몇 년간 고은 시인과 함께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 이번 방문 목적은.

 “아내 미셸(이탈리아계 미국인), 두 딸과 함께 일주일 일정의 가족 휴가로 왔다. 마침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성김 주한 미 대사가 대사관 프로그램으로 나를 초청했다. 가족 행사가 공식 행사가 된 셈이다. 광주와 전주에서도 강연이 예정돼 있다. 남도에서는 막걸리를 맛볼 생각이다.”

 - 당신에게 한국계 미국인의 의미는.

 “재미 교포들에게 한국계 미국인은 천차만별의 의미를 지닌다. 나는 한국과 진한 인연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 미국 이민을 가 처음으로 영어를 말한 게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지금은 한국 말을 알아듣지만 어휘력이 부족해 말하는 건 한계가 있다.”

 - 월가 금융인에서 전업 작가로 변신했는데.

 “대학 졸업 후 월가의 자산 애널리스트가 됐다. 수입이 좋아 삶을 즐길 만했다. 그런데 뭔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전업 작가로 나설까 생각했을 때 두려움이 일었다. 이민 가정의 자녀로서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작가가 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결정에 우셨다. 전업 작가로의 변신은 단순히 직업을 바꾸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내가 되는 것이었다. 월가를 떠난 뒤 작가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실패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도 하루 20시간 글을 썼다. 첫 소설은 출판사에서 거절당해 출판되지 못했다.”

 - 다음 작품은 언제 출간되나.

 “내년 1월 『On Such A Full Sea』가 출간될 예정이다. 개인과 커뮤니티(지역 사회)의 갈등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묻는 소설이다. ”

 - 작품들이 사회 속 개인 삶의 본질을 다룬다는 평을 듣는데 소설들이 지향하는 바가 있는가.

 “나는 소설에서 인간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진실을 찾으려 한다. 선악 등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들춰내고 싶다.”

 - 한국에선 인문학의 위기를 말한다.

 “예술과 문학만이 한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시켜 줄 수 있다. 국민총생산(GDP)이 아무리 커진다고 해서 그 나라의 특성을 만드는 게 아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번영하면 더욱 인문학이 중요해진다.”

 - 한국 소설을 읽어봤나.

 “몇 편 읽었다. 그런데 영어 번역이 매끄럽지 못했다. 외국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국 소설의 외국어 번역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데.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 같다. 내 소설이 인정을 받아 노벨상을 탄다면 좋겠지만 노벨상 수상은 나의 희망사항이 아니다. 신경쓰지 않는다.”

글·사진=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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