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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95> 규제개혁 '제1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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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03년 4월 18일 고건 국무총리(가운데)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2003년 규제개혁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고 총리 뒤에 이영탁 국무조정실장(왼쪽), 탁병오 비서실장(오른쪽)이 서 있다. [사진 고건 전 총리]

1997년 3월 5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대회의실. 총리 이·취임식이 처음으로 동시에 열렸다. 이수성 총리와 나는 서울대 56학번 동기다. 떠나는 이 총리는 신임인 나에게 웃으며 한마디 건넸다.

 “너무 힘들어서 축하는 못하고.”

 “위로라도 해줘야지.”

 나는 웃으며 답했지만 마음 속은 걱정으로 차 있었다. 한보 사태로 김영삼정부는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정경 유착이 경제를 좀먹게 했고 국민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해법이 필요했다. 나는 문제의 핵심을 규제라고 봤다.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 앞에 섰다.

 “행정의 투명성을 가로막는 허다한 정부 규제가 특혜와 정경 유착을 가져와 나라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경제 활성화와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규제 혁파 작업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입니다.”

 당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을 31위로 평가했다. 2년 전에 비해 7단계나 떨어졌다. 정부 규제와 행정의 불투명성이 점수를 갉아먹는 주요인이었다. 난 대통령 자문기구인 행정쇄신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행정 쇄신 정도가 아니라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고 밝혔다. 쇄신과 개혁을 넘어 틀을 부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규제 혁파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경제 활성화, 그리고 반(反)부패였다. 규제와 특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규제가 있기 때문에 특혜가 있다. 규제 없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경쟁하게 한다면 특혜와 부패는 사라진다.

 시간이 없었다. 김영삼정부의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주변 상황도 여러 모로 나빴다. 한보 사태와 경기 침체로 여론은 차갑기만 했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관련 부처 공무원의 저항도 문제였다. 다음 정부만 바라보고 있는 관료들이 움직이지 않으리란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사람은 가도 시스템은 남는다’. 이 원칙을 되뇌며 밀고 나갔다. 먼저 김영삼 대통령에게 “규제 개혁을 중점 시책으로 삼겠다”고 보고했다. 김 대통령은 재가를 해줬다. 속도를 냈다.

 4월 2일 가칭 ‘규제개혁추진회의’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벤처기업 활성화를 위한 창업 규제 완화, 규제 일몰제(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규제가 사라지도록 하는 제도) 단계적 도입, 규제영향 평가제도 시행 등 10가지 원칙도 함께 공개했다.

 없애야 할 규제와 강화해야 할 규제는 따로 있다. 환경·안전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 지금의 경제민주화 관련법처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경제 규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진입 규제 등 쓸모 없는 규제는 부패를 불러올 따름이다. 이런 규제를 없애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4월 21일 규제개혁추진회의가 공식 출범했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었던 규제개혁기구를 하나로 통합했다. 나와 김상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공동 의장을 맡았다. 강경식 경제부총리,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 최종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박상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 등 22명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그리고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정책을 뒷받침하는 행정규제기본법안이 통과됐다. 지금의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는 이렇게 출발했다. 전윤철 공정위원장이 실무를 주도했고 수고를 많이 했다. 1997년 한 해만 100여 건의 규제개혁 과제를 정했고 추진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비판도 많았다. 굵직굵직한 규제개혁 방안은 관련 부처의 반발이나 이해관계가 얽힌 민간단체의 반대로 가로막히기 일쑤였다. 지엽적인 규제만 손질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시스템을 탄탄히 갖춰놓는다면 실효성 있는 규제개혁은 언제든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1998년 8월 행정규제기본법이 발효되면서 규제개혁 작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2003년 2월 27일 나는 다시 국무총리가 됐다. 출범 7년째를 맞이한 규제개혁위원회는 한층 성장해 있었다. 경제위기 속에 규제를 개선하는 틀로서 역할도 해냈다. 뿌듯했다. 두 번째로 총리를 맡았을 때 “양 위주에서 질 위주 규제개혁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규제개혁의 내실화에 중점을 뒀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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