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왜 이러나] 1. 적자 쌓이는데 집안싸움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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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불렸던 벤처기업이 내우외환에 빠졌다. 경영환경이 계속 나빠지고 있는 와중에 일부에선 경영권 다툼까지 벌어지고 있다.

벤처산업 전체가 무너져내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지난 5년간 냉탕.온탕을 넘나든 우리 벤처산업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제2의 도약의 길을 찾아보는 기획시리즈를 싣는다. 편집자

한국 벤처기업의 대명사였던 한글과컴퓨터에는 지금 사장이 두명 있다. 지난 7일 이사회에서 김근 사장을 해임하고 유한웅씨를 대표이사로 임명했지만 金사장이 반발, 대표이사직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두 사장은 각각 변호사와 함께 회사로 출근한다. 회사 인감도 각각 따로 갖고 있다. 임원들은 두 패로 나뉘어 대립한다. 직원들은 일손을 놓고 앞날을 걱정한다. 회사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한때 벤처 신화의 주역이었던 한글과컴퓨터의 현 모습은 멍들 대로 멍든 국내 벤처기업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악에 빠진 국내 벤처=한글과컴퓨터는 현재 지분을 1% 이상 갖고 있는 대주주가 없다. 지난달 24일 최대주주였던 홍콩의 투자법인 넥스젠이 갖고 있던 지분 9.43%를 소액주주들에게 완전 매각하자 경영권 분쟁이 일어났다.

대규모 투자자들은 한컴을 매력없는 기업으로 보고 있다. 경영 성적은 초라하다. 지난해 적자만 1백30억원, 2001년은 적자가 4백16억원이나 됐다. 그런데도 내부에서는 경영권 다툼을 해 추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같은 벤처 5년의 영욕은 한때 벤처의 메카였던 테헤란 밸리에 그대로 담겨 있다.

오상수(새롬기술).전제완(프리챌).이진성(인츠닷컴) 등 이곳의 스타플레이어 창업주들은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구속됐거나 형사처벌됐다. 우수 기업은 머니게임의 희생자로 전락, 테헤란 밸리를 떠났다. 심스밸리는 한때 디지털레코더기 시장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이 15%에 달했던 대표 기업이다.

하지만 2001년 10월부터 지난해 중순까지 1년 사이에 회사 최대주주가 다섯번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코스닥에 등록하면서 확보한 공모자금 2백억원은 모두 사라졌다. 마지막 대표이사였던 유모(37)씨는 회사 공금 90여억원을 개인 돈처럼 빌려가고, 다른 공모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구속됐다. 회사는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됐다.

이 회사 직원이었던 金모씨는 "벤처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대박 신화에 빠져 기술개발은 뒷전인 채 돈놀이만 한 결과가 이렇게 참담하다"고 허탈해했다. 이 결과 테헤란 밸리는 회사 대표가 운전자금 마련을 위해 사채업자와 만나는 장소로 변하고 있다.

◇쏟아지는 벤처 매물=벼랑 끝까지 몰린 벤처 기업들이 넘쳐나고 마지막 수단으로 새 주인을 찾아보려 하지만 이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구조조정부 윤종훈 부장은 "현재 벤처 기업으로 인증받은 8천여 기업 중 약 30% 가량은 새 주인을 찾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기업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다. 수익모델이 없고, 기술도 변변치 않은데 투자자가 관심을 가질 리 없다. 그래서 호수의 물이 계속 썩어가 그나마 건강한 물고기까지 죽는다는 두려움이 테헤란 밸리에 드리워졌다.

김종윤.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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