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에 웃고 호재에 울고 … 상식 엎는 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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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7일(현지시간) 뉴욕증시 장중에 전해진 미국의 6월 실업률(7.6%)은 예상보다 나빴다. 전달보다 0.1%포인트 오르며 석 달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평균 임금도 정체돼 고용의 질마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식에 증시는 오히려 반색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3차 양적완화(QE3) 축소가 늦춰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돼서다. 이날 다우존스지수는 1.38% 상승했다. 이 소식은 주말에 한국에도 전해져 이틀 연속 급락하던 코스피지수가 10일 반전에 성공했다.

경기지표 악화 뉴스가 상승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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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앞서 3일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5월 제조업경기지수(ISM 지수)가 6개월 만에 경기 위축을 의미하는 49로 나왔다. 2009년 4월 이후 4년여 만에 가장 낮았다. 그러자 다우지수는 1% 가까운 급등세로 마감했다. 다음 날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도 외국인들은 이달 들어 최대 순매수(1275억원)를 했다.

 요즘 증시가 청개구리다. 경기가 좋아질 것 같으면 오르고, 나빠질 듯싶으면 내려야 하는데 거꾸로 간다. 특히 연준이 가장 중시하는 실업률 지표는 거의 예외 없이 증시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경기 호전에 따른 기업가치 상승은 나중 일이고, 당장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여부가 중요하다는 투자자들의 심리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증시는 경기지표 자체보다는 지표가 미국 연준의 정책방향에 줄 영향의 방향성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4월 말∼5월 초 전대미문의 1만5000선 고지를 뚫으며 거침이 없었던 다우지수의 상승세를 주춤하게 만든 것도 역설적이게 미국 경기지표 호조였다. 5월 9일 나온 4월 실업수당청구 건수는 5년래 최저를 기록했고, 나흘 뒤 나온 4월 소매매출은 예상 밖의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자 시장은 양적완화 축소를 걱정하면서 2거래일 연속 약보합세를 보였다.

“양적완화 종료 늦춰질 것” 환호

 경기지표보다 연준의 회의록과 관계자 발언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요즘 글로벌 증시의 특징이다. 2월 20일 공개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 양적완화 축소가 언급되자 뉴욕증시와 국내증시가 나란히 하락했다. 5월 중순∼하순에도 연준 총재들의 발언 내용에 따라 글로벌 증시는 춤을 췄다. 5월 15일 샌프란시스코 연준 총재 발언(경기부양 종료 필요성 언급)과 22일 FOMC 회의록(부양책 축소시사) 공개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던졌다. 반대로 21일 세인트루이스 연준 총재의 발언(경기부양 필요성 강조)에 글로벌 증시는 상승으로 화답했다.

외국인 귀환 … 15일 만에 순매수

 27일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들이 15일 만에 순매수로 돌아선 것도 전날 뉴욕에서 나온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하락 발표 덕이 컸다. 미국 1분기 GDP 증가율(1.8%)이 잠정치에 훨씬 못 미치자 미국 연준의 매파들은 일제히 경제성장을 우려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제프리 래커 리치먼드 연준 총재는 “미국 경제의 확장세는 앞으로 몇 년간 부진한 모습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매파인 나라야나 코컬라코타 미니애폴리스 연준 총재도 “실업률은 내년 하반기 중에나 7%에 도달할 것”이라며 “실업률이 7% 아래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자산매입 조치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이 알려지면서 다우지수가 1% 이상 뛰었고, 다음 날인 27일 코스피지수는 51.25포인트(2.87%)나 급등한 1834.7에 마감됐다.

 신한금융투자 곽현수 연구원은 “규모나 기간이 애초에 정해졌던 QE1, QE2와 달리 QE3는 대략적인 로드맵만 밝혀져 있을 뿐 경기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크다”며 “미국 경기지표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거리는 일이 당분간 자주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값은 뚝뚝 34개월 만에 최저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도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의 긴축 우려와 중국의 경기 부진이라는 G2(주요 2개국)발 악재가 본격화하면서다. 26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8월 선물 금값은 전일보다 트로이온스(31.1g)당 45.3달러(3.6%)나 빠진 1229.8 달러를 기록했다. 2010년 8월 이후 34개월래 최저치다. 고점이었던 2011년 9월 6일(1920.8 달러)과 비교할 때는 36%나 빠졌다. 이런 금값 약세는 ‘달러 강세, 금리 상승, 중국 경기 부진, 인플레 주춤’이란 쿼드러플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은값은 더 떨어졌다. 올 2월 초까지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트로이온스당 32달러 선에 거래되던 은은 18달러 선까지 내려갔다. 은은 국내에서도 파생경합증권(DLS)의 기초자산으로 많이 편입돼 있어 투자자들의 손실도 우려된다. 대우증권 손재현 연구원은 “귀금속과 비철금속 등 원자재 시장은 현재로선 악재로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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