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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시골서 자유롭게 키웠더니 16명 모두 책임감도 남달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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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진 러시아의 인구는 1억4300만 명. 감소 추세다. 1990년대에 시작된 인구 위기다. 러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 출산율과 사망률이 각각 소폭 상승·하락했지만 전문가들은 낙관하지 않는다. 인구 유지를 위해 가임 여성당 출산율이 2.1명이어야 하는데 1.72명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수치를 무색하게 하는 여성들이 있다. 자녀가 16명인 마리나 솔로베이(47)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녀의 ‘다산(多産) 철학’이 궁금했다.

마리나 솔로베이 대가족의 셋째인 바실리사(20·가운데 머리띠를 두른 여자)의 2012년 결혼식. 앞줄 왼쪽 수염을 기른 이가 마리나의 남편 이고리인데 올해 4월 사망했고 그 오른쪽이 마리나다. [사진 솔로베이 가족]

지난 6월 19일 모스크바 서쪽 150㎞ 볼로골람스크구의 베료즈카 마을. 여름 햇살에 잎이 푸르게 빛나는 나무들이 마을을 둘러싼다. 흙길을 따라 마을 외곽으로 나가자 멀리 벽돌로 지은 작업장이 있고, 햇볕에 그을리고 머릿수건 아래 흰 머리가 비치는 서글서글한 눈매의 중년 여성이 있다. 마리나 솔로베이, ‘다자녀의 여왕’이라 할 만한 그가 웃으며 아이들과 함께 서 있다.

이들이 서 있는 곳은 면적이 24만㎡나 되는 가족의 집이다. 정부가 제공한 땅에서 마리나의 대가족은 울타리도 없이 자유롭고 편한 삶을 산다. 감자꽃과 잡초가 뒤섞인 곳에서 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은 맨발로 뛰논다. 지금 이곳에 있는 마리나의 자녀는 10명, 나머지 6명은 도시에 있다. 맏아들 안톤은 26세, 막내 마트베이는 돌도 안 됐다. 도대체 왜 모스크바 토박이인 마리나가 그토록 긴 세월 아이를 낳았을까.

1 일곱째인 스테판(17)과 돌도 안 된 막내 마트베이. 스테판은 벌써 10명을 키워냈다. 2 선물로 받은 케이크를 먹는 아이들. 제일 먼저 엄마에게 갖다줬다. 3 다섯 살 그리샤. 스테판 형을 졸졸 따라다닌다. 4폴리나(14·왼쪽)와 크슈샤(12)가 돌아가며 막내 마트베이를 돌본다. 5 스테판이 불도저로 만든 길에서 동생들과 사진을 찍었다. [사진 루슬란 수후쉰]

러시아에선 둘째 아이 때 1만2500달러의 지원금을 한 번 받는다. 그리고 가족은 공공요금 30% 할인, 시내 대중교통 무료 이용, 의약품 무료 제공, 우대 대출 프로그램 제공, 우선 주택 제공, 학교 무료 급식 등의 혜택을 받는다. 그녀도 이런 혜택을 받았지만 그 때문에 많은 자식을 낳은 게 아니었다.

‘하느님의 뜻’이란 게 마리나의 철학이다. 마리나는 모스크바에서 사범대를 다녔고 대학 시절 두 번 결혼해 두 번 다 실패했다. 첫 남편과 2년 살았지만 아이는 없었다. 이어 두 번째 남편을 만났고 헤어졌다. 헤어질 때는 배 속에 둘째가 있었다. 그때 1982년부터 알았던 세 살 위인 이고리가 나타났다. 처음엔 마음에 안 들었지만 점차 그녀는 마음을 뺏겨갔다. 마리나는 “해가 갈수록 마음이 사랑으로 변했죠”라고 회상했다. 그때만 해도 마리나는 ‘아들 여섯에 딸 열인 다자녀 엄마’가 된다는 생각을 꿈에도 안 했다. 그러나 결혼 뒤 아이는 매년 태어났다.

당시는 90년대, 세상이 한창 어려울 때였다. 여섯 식구가 공동 아파트의 14㎡밖에 안 되는 좁은 방에서 복닥거리며 살았다. 마리나는 넓은 아파트를 배정받으려고 관공서의 문턱이 닳도록 다녔지만 헛수고였다. 그러다 2000년 ‘기적’이 벌어졌다. 당시 열자녀 가족 중 가장 젊은 엄마였던 마리나 이야기가 신문에 실렸는데 마침 같은 면에 유리 루즈코프 모스크바 시장의 기사가 실렸다. 마리나 기사를 읽은 시장은 모스크바 변두리에 방 4개짜리 아파트를 제공했다. 이어 모스크바 외곽 미티노에 있는 아파트 한 층 전체인 세 채를 추가로 제공받았다.

“그런데 다자녀 가족에겐 도시 생활이 어려웠어요. 주변에는 큰 도로가 나 있었고 환경도 애들에겐 나빴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이웃들이 말이 많았지요.”

마리나는 2006년 시골인 베료즈카 마을로 가기로 결정했고 구청은 36만㎡의 땅을 가족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그런데 도로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땅이었다. 다 갖추자니 너무 부담이 컸다. 전기 기술자였던 이고리는 직접 발전기를 만들어 전기를 생산했다. 냉장고와 노트북, 몇 개 안 되는 전자제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웃들은 전기를 훔쳐 쓸까 의심했고 정부 생계비 지원을 받는다고 무시했다. 근근이 해결해 갔지만 결국 공공요금을 체납해 부지의 3분의 1은 반환해야 했다.

살림은 늘어갔다. 러시아 백만장자 중 한 사람인 게르만 스테를링고프가 통나무 집 두 채를 짓는 데 도움을 줬다. 전원생활과 신앙 전도를 위해 2000년 시골 생활을 시작한 그는 마리나 가족에 젖소도 구해줬다. 이렇게 ‘도시 엄마, 도시 아이들’의 시골 생활이 시작됐다. 마리나는 우유를 짰고 닭과 돼지도 키웠다. 우유 15L로 아이들은 ‘트보록’(응고된 우유)과 치즈를 만들고, 나머지는 내다 판다. 인터넷에서 배워 감자도 키운다. 그런데 달걀은 하루에 열 개도 안 나온다. 닭을 샀는데 실수로 수탉이 절반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애들도 전원 생활에 익숙했고 제 몫을 한다. 일곱 살이 넘으면 모두 당번에 ‘투입’된다. 하루 세 번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하고, 물을 길어오고, 겨울엔 난로에 불을 지핀다. “아이들은 일곱 살에 이미 화로에 10인분 저녁을 준비할 수 있어요.” 마리나는 자랑한다. 식사는 소박하다. 아침엔 카샤(죽), 점심엔 수프, 저녁엔 가끔 고기를 곁들여 감자와 마카로니를 먹는다.

군으로 치면 분대 규모인 아이들. 당연히 다툼이 있다. 기자가 보는 앞에서도 그랬다. 여덟째 딸인 아냐(15)가 소리 지르면서 조그마한 가구를 내던졌다. 욱하는 성격 때문이다. 그러다 금세 화해해선 여동생과 논다. 여자애들은 막내 마트베이에게 아기 흔들 의자를 가져다 준다. 마트베이 돌보기는 거의 형과 누나들 몫이다. 마리나가 마트베이를 데려오는 경우는 밥을 먹이거나 얼러줄 때뿐이다. 마리나네 가족이 도시에 살 때는 보모가 했던 일이다. 마리나는 “농촌에서 자란 아이들이 더 잘 돕고 책임감을 일찍 배운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마리나는 교육도 전원식으로 한다.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친다. 대학 시절의 사범 교육이 도움이 된다. 인터넷으로 시험지를 받고 답안지는 나이 많은 아이가 등록된 학교에 제출한다. “저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제한하지 않아요. 학교가 제시하는 엄격한 틀에 공감하지 않아요”라고 그는 말한다.

시골 생활이 아이들의 미래를 방해하지 않게 마리나는 ‘먹고사는 능력을 배우는 데’ 무게를 둔다. 아이들 중 대학을 졸업한 건 맏아들 안톤뿐이다. 나머지는 조리전문대학이나 미용사 과정, 간호사 과정을 수료했다. 시골에 사는 자식들은 밭을 갈거나 작물을 재배하고, 그 일로 용돈도 번다. 올해로 17세인 스테판은 불도저 운전을 배워 돈을 받고 이웃들의 밭갈이를 돕는다. 지난 4월 아버지 이고리가 세상을 떠난 지금 스테판은 여섯째지만 가장 역할을 한다.

남편 이고리는 술 때문에 죽었다. 상중인 마리나는 상복을 입고 있다. 말년에 가족을 힘들게 했지만 이고리는 죽은 뒤에도 책임을 다한다. 법적으로 ‘가장’이 사망하면 18세 미만 자녀 한 명당 매월 400달러가 지급된다. 그래서 가족은 월 4000달러를 받는다.

맏아들 안톤과 둘째 나스차(23)는 모스크바의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 산다. 안톤은 장가를 서두르지 않는다. 스테판도 “먼저 자립하고 아파트도 구한 다음 여자예요. 그 전에 결혼하면 여자는 방해만 될 뿐”이라고 형 안톤을 거든다. 마리나는 안톤이 너무 계산적이고 신앙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안톤과 나스차는 두 번째 남편에게서 얻은 아이들. 그녀는 “두 아이는 나머지 애들과 달라요. 대가족을 부담스러워해요. 엄마와 어린 동생들을 늘 도와주지만 가족과 거리를 두려고 하지요”라고 말한다.

마리나는 장성한 자식들이 가족의 가치를 잊어가는 현대사회의 영향에 너무 노출돼 있다고 걱정한다. “여성들이 중요한 사명인 ‘어머니가 되는 것’을 잊고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지요. 그래서 아이를 낳기 좋은 여건을 보장해 줄 남자를 못 찾는 건지도 몰라요.” 마리나는 아이들에게도 다산에 대한 생각을 심어주려 한다. “제 딸들은 훌륭한 어머니이자 주부가 될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남편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동갑내기는 잘 안 통할 것이고… 어른스럽지 못하거나 책임감이 없거든요. 역시 많은 형제·자매 속에서 자란 짝을 찾을 수밖에 없겠네요.”

마리나는 “저희는 솔로베이(꾀꼬리라는 뜻)라는 우리 성이 울려퍼지도록 노력할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고리가 죽어서 더 이상 아이를 낳지는 않을 것이다. 하기는 그럴 마음의 여유도 이젠 없다.

리사 레비츠카야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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