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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서울 가면 박정희 묘소 참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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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박근혜 대통령(당시 한국미래연합창당준비위원장)이 2002년 5월 13일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다. 박 대통령의 왼쪽은 신희석 아태정책연구원 이사장. 오른쪽 사진에서 박 대통령의 우측 여성은 방북 기간 중 줄곧 안내를 맡은 김성혜로 최근 당국회담을 위한 판문점 실무접촉에 단장으로 나왔다. 사진은 신 이사장이 제공했다.

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회담 내용을 공개하라고 압박하고 나선 가운데 당시 회담장에 배석했던 신희석(68) 아태정책연구원 이사장이 입을 열었다. 신 이사장은 2002년 5월, 박 대통령이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 자격으로 방북해 김 위원장을 만났을 때 배석했던 유일한 남측 인사다. 그는 2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 간 대화에서 북방한계선(NLL) 문제는 일절 거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참배를 거절하자 이를 의식한 듯 김 위원장은 회담 때 “내가 서울에 가게 되면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겠다. 그게 도리”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다음은 신 이사장과의 문답.

 -회담엔 누가 배석했고 진행 상황은.

 “처음 30분은 김용순 당 비서(2003년 사망)와 내가 배석했다. 이어 약 1시간 동안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단독회담을 했다. 그땐 북측 속기사가 대화 내용을 기록했으니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다.”

 -야당은 박 대통령이 너무 저자세였다고 비판한다.

 “야당으로부터 트집 잡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발언에 하자도 없고 빌미 잡힐 일도 없었다.”

 -김 위원장은 어떤 발언을 했나.

 “김 위원장은 ‘아버지 세대는 대립적 관계였지만 아들과 딸이니 한반도 평화 정착이란 공통의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박 대통령이 공감했다. 박정희와 김일성은 1960년대 초부터 남북 체제 경쟁을 해온 필생의 숙적이었다.”

 -금수산 기념궁전엔 정말 안 갔나.

 “김일성 주체탑을 시찰하고 김일성 대학 등을 방문했다. 금수산 기념궁전은 김일성 시신이 안치돼 있는 곳이어서 일부러 안 갔다.”

 -박 대통령은 당시 어떤 제안을 했나.

 “방북을 계기로 남북이 신뢰를 회복하고 불신감을 제거해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국제관계에 영향을 주는 미·중·일·러 등 주변 4강과의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이 왜 박 대통령을 초청했다고 보나.

 “전략적 계산을 했을 것이다. 원수지간이던 두 아버지의 아들과 딸이 만나 식사하고 회담하면 한반도 긴장 완화에 획기적 사건이 될 거라고 판단해 박 대통령을 꼭 보고 싶어 한 것 같다. 박 대통령에 대한 신뢰감과 기대감을 강하게 표시했고 큰 역할을 해주길 기대했다.”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발언록을 공개했는데.

 “당시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는 NLL이란 용어조차 거론되지 않았다. NLL 문제에서 박 대통령은 문제될 발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NLL 대화록 공개는 국정원이 단독으로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의 의중을 감안했을 수 있다.”

 당시 북한은 김 위원장의 전용 특별기를 베이징에 보내 박 대통령 일행을 태우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묵었던 백화원초대소 방에 묵게 하는 등 의전에도 각별히 신경썼다고 한다. 또 남북 고위급 회담 실무협상 대표로 나왔던 김성혜 조평통 서기국 부장이 평양에 체류하는 3박4일 동안 박 대통령을 밀착 수행했다. 신 이사장은 “보안의식이 강한 박 대통령은 백화원 초대소 구내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매일 아침 1시간씩 공원을 같이 걸으면서 회의를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장세정 기자

◆신희석=대전 출신으로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학위(일본 정치외교 전공)를 받았다.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약 20년간 근무했으며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해 왔다. 2002년 미래연합 창당 준비위원으로 위촉되면서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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