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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해제 전에 … 김무성·권영세 '회의록' 입수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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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당 박범계 의원(오른쪽 셋째)이 26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지난해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던 권영세 주중 대사가 대선을 앞두고 집권하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대화록을 공개할 계획임을 언급했다”고 말하며 권 전 실장의 음성이 담긴 녹음 파일을 공개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방이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사전에 유출됐는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26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화록을 입수해서 봤다”고 발언했다는 인터넷 언론의 보도가 불씨가 됐다. 보도에 따르면 김 의원은 “지난 대선 때 대화록을 입수해서 읽어봤다. 몇 페이지 읽다가 손이 떨려서 다 못 읽었다”고 밝혔다. 또 “‘원문’을 보고 우리 내부에서도 회의도 해봤지만 우리가 먼저 까면 모양새도 안 좋고 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했는데 원 전 원장이 협조를 안 해줘서 공개를 못했다”거나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대선 당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3시쯤 부산 유세에서 그 대화록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부짖듯 죽 읽었다”는 발언도 보도됐다.

 사실이라면 당시엔 기밀이었던 정상회담 대화록이 불법적으로 사전에 새누리당 대선 캠프에 유출됐다는 의미가 된다. 최근 남재준 국정원장이 비밀해제를 해 일반문서로 바뀌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상회담 대화록을 보관하고 있었던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을 확대시킬 수 있는 사안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대선 당시 정문헌 의원이 남북 정상회담 대화내용에 관한 문제를 제기해 정 의원에게 구두로 ‘어떻게 된 사안이냐’고 물었고 정 의원은 구두로 설명해줬다.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이후 민주평통 행사 등에서 NLL(북방한계선) 문제와 관련해 발언하신 내용을 종합해서 만든 ‘문건’이 있었는데 이 문건을 가지고 부산 유세에서 연설에 활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기사에 내가 ‘원문’을 봤다는 내용이 있는데, ‘문건’이라는 표현이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원문을 봤다’라는 얘기를 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사전 유출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김 의원은 ‘원문이 아니라 문건’이라고 해명했지만 민주당이 확인한 김무성 의원의 12월 14일 부산역 찬조연설 내용은 너무나 원문과 일치한다”며 “민주당은 심각한 사안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당 배재정 대변인은 “김 의원이 지난 대선에서 원문을 입수한 경위도 국정조사에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해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의 권영세(현 주중 대사) 종합상황실장이 정상회담대화록에 담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공개하는 것을 검토했다는 폭로도 했다. 박 의원은 국회 법사위에서 “2012년 12월 10일 여의도 모 음식점에서 녹음된 것”이라며 음성 파일에 담긴 권 대사의 말을 공개했다. 내용은 이렇다.

 “NLL 관련 얘기를 해야 되는데… NLL 대화록, 대화록 있잖아요. 자료 구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 그거는 역풍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그거는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계획)이고, 도 아니면 모고, 할 때 아니면 못 까지. 소스가 청와대 아니면 국정원이니까. 대화록 작성하는 데서 거기서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거는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까고.”

 음성파일엔 여러 사람이 웅성거리는 듯한 잡음과 함께 음악소리도 섞여 있었다. 박 의원은 출처에 대해선 “지난해 12월 권 대사가 지인들과 대화한 것이다. 이 음성파일은 도청된 게 아니라 민주당에 제보된 것”이라고만 했다. 이어 “NLL 대화록은 이명박 정부 시절 이미 불법·무단으로 유출돼 ‘정상회담 분석보고서’라는 내용으로 정제됐고 이 전 대통령과 여러 사람이 기밀자료를 들여다봤으며 공유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새누리당 법사위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식당에서 이뤄진 타인과의 대화를 (몰래 녹음해) 공개한다면 이는 통신비밀보호법상 처벌 대상으로, 언제 어디서 누가 녹음했는지도 정확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같은 당 김진태 의원도 “불법 행위로 취득한 자료라면 이를 만든 자체가 범법 행위로 조사받아야 할 사안”이라고 비난했다. 권 대사는 주중 대사관 홍보관을 통해 “그 부분에 대해선 전혀 부끄러운 점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의 박영선 의원은 당 중진회의에서 “오늘 나온 권 대사의 얘기는 아주 긴 얘기 중 일부”라며 “여권의 대선 개입 의혹에 관련된 음성파일을 100여 개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권 대사 뒤에 누군가 또 있다. 앞으로 계속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강인식·김경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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