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공 첫 LPGA우승…주문 밀려오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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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현재 LPGA 투어에서 볼빅 공을 쓰는 선수는 이일희를 비롯해 11명이나 된다. 이일희는 지난달 LPGA 투어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에서 볼빅의 노란색 공을 사용해 생애 첫 우승을 했다. 볼빅은 이일희의 활약에 힘입어 해외시장 수출 확대를 노리고 있다. [중앙포토]

총 338승(남자 79승, 여자 259승). 지난 24일까지 한국 남녀 프로골퍼가 전 세계 골프투어에서 우승한 승수다. 이 중에 순수 국산 골프클럽이나 골프공으로 우승한 건 얼마나 될까. 답은 1%에도 못 미치는 고작 3승(0.89%)이다. 국산 골프클럽으로 우승한 것은 두 번이고, 국산 골프공을 사용한 우승은 단 한 번이다. 국산 브랜드가 골프의 종주국인 영국과 미국 등에서 경쟁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특히 골프공은 투어 프로가 사용하지 않으면 B급 취급을 받는다.

 지난달 27일 국산 컬러 골프공(볼빅)을 사용하는 이일희(25)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진출 4시즌 만에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에서 생애 첫 우승을 했다. 품질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볼빅도 ‘히든 챔피언’이란 영예를 안았다.

 “처음 지인들에게 ‘골프공 사업을 해보겠다’고 말을 꺼냈더니 반응이 싸늘했다. 지금 하는 사업이나 잘하라고 했다. 미쳤다는 얘기도 들었다.”

 총 무게 45.93g의 공에 색깔을 입혀 컬러 골프공의 바람을 일으키고, 세계 골프무대에서 ‘1승’이란 축포를 쏘아올린 사람. 국산 골프공 제조업체 ㈜볼빅을 이끌고 있는 문경안(55) 회장이다. 비엠스틸이라는 철강유통회사를 경영하던 문 회장이 볼빅을 인수한 건 2009년 8월. 당시 볼빅은 연간 매출 25억원 정도의 작은 회사였다. 또 외국 브랜드가 국내 골프공 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었다.

국산 골프공 제조업체 볼빅의 문경안 회장은 컬러공을 히트 상품으로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문 회장은 볼빅을 인수한 지 4년 만에 매출 규모를 10배 이상 끌어올렸다. [중앙포토]

 문 회장은 “내가 클럽 챔피언(2006년 신원 골프장) 출신이라 골프가 좋아 회사를 인수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실상을 알게 됐다. 월 고정비는 5억원인데 매출액은 2억원이었다”고 말했다.

 생존 전략을 찾아야 했다. 첫째, 12개들이 1더즌당 2~3달러의 적자를 보는 저가 2피스 공의 수출을 중단했다. 둘째, 틈새시장 공략을 위해 야간 전용 형광색 공을 내놨다(이 공이 볼빅의 히트 상품인 컬러공의 원조가 됐다). 셋째, 다층구조로 최고가인 8만원짜리 4피스 골프공을 출시해 국산은 싸고 품질도 좋지 않다는 인식을 바꿔놓았다. 넷째, 프로 선수를 대상으로 ‘볼빅 공을 사용해 우승하면 1억원 드립니다’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신청만 해도 50만원, 예선 통과하면 200만원을 지급했다. 이벤트에 참여했던 배경은은 2009년 볼빅과 후원계약을 맺은 첫 선수가 됐다. 이를 계기로 프로들도 쓰는 공이란 인식이 생겼다).

 이제 볼빅 골프공은 LPGA 투어에서 이일희 등 11명의 선수가, 국내 남녀 정규 투어에서는 13명이 사용한다. 국내 시니어와 주니어 선수 175명을 합치면 199명이나 된다. 평범한 마케팅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 대안으로 ‘컬러공’을 택했던 문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볼빅은 회사를 인수한 지 3년10개월 만에 3%에 불과하던 국내 컬러공 시장을 3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지난해 매출 규모는 280억원이었다.

 문 회장은 “중소기업 가운데서도 세계 1등을 하는 곳이 많다. 『히든 챔피언』이란 책을 읽고 나도 이런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볼빅은 이일희 우승 이후 올해를 ‘해외시장 수출 확대의 원년’으로 삼았다. 해외 마케팅을 하지 않았는데도 바이어들이 제 발로 찾아오고 있다. 중국과 호주·인도네시아·베트남 등에는 이미 수출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시장도 열렸다. 문 회장은 “지난 2일 미국 뉴저지의 스톡턴 시뷰 골프장에서 LPGA 투어 숍라이트 클래식이 열렸다. 그동안 명문인 이 골프장의 프로숍에서는 우리 공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일희가 우승한 골프공이라면 입점해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고 활짝 웃었다.

 문 회장은 ‘골프공 생산의 원천기술은 한국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인건비 등을 아끼기 위해 제3국에 공장을 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볼빅은 최근 ‘화이트 컬러공’을 내놓았다. 컬러공의 성공을 바탕으로 65%의 흰색 골프공 시장을 향해 싸움을 건 것이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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