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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히스토리] 샬럿 호니츠 (2)

중앙일보

입력

◇ 호니츠 닻을 올리다.

샬럿 호니츠가 리그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1988~89시즌에 앞서 새로운 팀의 창단 맴버가 될 선수들이 선발되었다.

당초 영입을 원했던 세드릭 토니, 클린턴 휠러, 버나드 톰슨에게 호니츠 유니폼을 입히는데 실패했으나 NBA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로 호니츠의 선수 명단은 채워지게 되었다.

확장 드래프트(expansion draft)를 통해 호니츠에 합류한 선수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 ( )은 이전 소속팀

델 커리(클리블랜드 캐발리어스), 타이론 '먹시' 보그스(워싱턴 불레츠), 릭키 그린(유타 재즈), 데이브 호펜(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마이클 홀튼(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랄프 루이스(디트로이트 피스톤스) 그리고 자유계약을 통해 커트 램비스(LA 레이커스), 얼 큐어튼(LA 클리퍼스)가 합류했고 트레이드를 통해선 켈리 트로피카(유타 재즈)와 로버트 레이드(휴스턴 로케츠)가 새로이 호니츠 유니폼을 입었다.

이들 중 커리와 보그스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큰 인기를 얻었고 비록 현재는 호니츠 소속이 아니지만 01~02시즌에도 여전히 현역 선수로 활약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당시 함께 팀을 창단했던 마이애미 히트와 비교해볼 때 호니츠는 가드진에 많은 수의 베테랑 선수들을 선발했고(보그스만이 1년 차 시즌을 마친 선수였다) 아울러 포워드진에서도 5년 차 이상의 경험 많은 선수들이 다수 포진해 히트가 1~3년차 선수들을 주로 선발했던 것과 대조를 이루기도.

기존 선수들에 대한 선발이 끝나자 팀은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3라운드까지 선수를 선발했던 마지막 해인 198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호니츠가 선택한 선수들은 다음과 같았다.

1라운드 8순위 지명권으로는 켄터기대학 출신의 득점력이 뛰어난 렉스 체프먼을 2라운드 34순위로 애리조나대학의 포워드 톰 톨버트를 마지막 3라운드 58순위로 어번대학의 제프 무어를 선발하며 그들의 첫 번째 신인 드래프트를 마쳤다.

특히, 채프먼은 커리, 트로피카와 함께 호니츠의 공격을 이끌며 큰 인기를 모았고 데뷔 하던 해 올스타전 슬램 덩크 대회에 참가하며 백인으로는 믿기지 않은 고난도의 묘기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후 래리 존슨, 알론조 모닝이 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호니츠의 간판 선수로 활약하게 된다.

톨버트는 비록 14경기만을 뛰고 89~90시즌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로 트레이드 되었지만 현역 선수 생활을 끝내고 현재 NBC 방송의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 호니츠, 돌풍의 시작

코칭 스테프의 구성, 선수 선발, 신인 드래프트를 모두 마친 샬럿 호니츠는 드디어 1988년 11월 4일 그들의 홈구장인 '샬럿 콜로세움'에서 역사적인 NBA 첫 경기를 맞게 된다.

당시 상대는 클리블랜드 캐발리어스.

호니츠는 가드진에 그린과 트로피카, 포워드진에 램비스와 레이드 그리고 센터에 호펜을 선발 출전 시켰다.

그들의 첫 번째 슈팅은 그린이 시도했으나 득점하지 못했다. 캐발리어스의 득점이 이어진 후 트로피카가 호니츠 역사상 첫 번째 득점을 기록하는 선수로 이름을 올리게 됬다.

호니츠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지만 기존 NBA 팀들은 만만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첫 번째 경기에서 큰 격차를 보이며 133-93으로 패하게 된다. 하지만 신생팀 호니츠는 불과 3경기만에 LA 클리퍼스를 맞아 첫 승리를 거둔다. 호니츠는 NBA 데뷔 첫해 20승 62패의 성적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팀 성적은 형편없었지만 당초 우려했던 팬들의 무관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팀이 지던 이기던 어김 없이 호니츠의 홈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많은 수의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고 이는 8시즌 동안 317경기 연속으로 홈 경기가 매진되는 새로운 NBA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그들의 모자와 티셔츠, 유니폼은 리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으로 등장했고 전통 있는 LA 레이커스, 보스턴 셀틱스 그리고 새로운 리그 강자로 군림하며 인기를 끌던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보다 더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기도.

코트안에서나 밖에서나 호니츠의 인기는 하늘 높이 치솟았고 이들이 과연 창단한지 얼마 안된 신생팀이란 사실은 이미 팬들의 뇌리에는 자리잡고 있지 않았다.

홈 경기 매진 행진은 이후 95~96시즌까지 계속된다.

◇ 전성기를 위한 초석

첫 시즌이던 88~89시즌을 마친 호니츠는 198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역 스타였던 J. R 리드를 1라운드 5순위로 지명하게 된다.

리드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출신의 206cm의 파워포워드로 팬들의 기대는 대단했다.

그는 신인 시절 단숨에 팀의 주전 파워포워드로 82경기 모두 선발 출전하며 평균 11.1득점, 8.4리바운드의 준수한 성적을 올리며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팀의 성적은 전 시즌 보다 1승 모자란 19승 63패를 기록, 오히려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즌 중반 그동안 팀을 지휘하던 딕 하터를 해임시키고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진 리틀스에게 대행자리를 맡겼으나 호니츠의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199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호니츠는 1989년과 같은 1라운드 5순위 지명권을 가지게 되었다.

내심 '로터리 픽'에서 1순위 지명권을 바라며 데릭 콜맨, 게리 페이튼을 영입할 계획이었던 호니츠로선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들은 일리노이대학출신으로 운동 능력이 뛰어난 가드 켄달 길을 지명하게 된다.

길은 데뷔시즌부터 호니츠의 공격을 활발하게 주도했다.

단신 포인트 가드였던 보그스와 함께 백코트를 이끌며 그는 커리와 함께 번갈아 가며 선발 출전 팀이 90~91시즌 26승 56패를 기록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호니츠는 전 시즌 보다 7승을 더 기록하며 다시 한번 1991년 신인 드래프트 '로터리 픽'에 나서게 된다.

비록 상승된 팀 성적으로 인해 1순위 지명권을 차지하게 될 확률은 적어졌지만 호니츠에게는 그동안 오지 않았던 행운이 찾아왔다.

바로 1991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차지하게 된 것.

호니츠는 주저 없이 당시 대학 최고의 팀이자 선수로 평가되던 UNLV(라스베가스대학) 출신의 파워포워드 래리 존슨을 1순위 지명권을 이용해 데려왔다.

팀은 존슨의 가세와 기존의 보그스, 커리 그리고 1~2년 차 시즌을 막 끝냈던 길과 리드를 중심으로 드디어 도약을 준비하게 된다.

류한준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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