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박근혜와 시진핑의 밀통적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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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전 산업자원부 장관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한·중 정상대화에서 두 나라 정상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평화 체제에 관해 같은 배를 타고 같은 생각을 하는 계기를 만들기 바란다. 양국관계는 1949년 이후 43년간의 단절이 있었고 수교 이후에도 보이지 않는 간극과 오해와 불신이 드리워 있었다. 중국은 한·미 동맹의 프레임 속에서 한국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못했고 한국은 북·중 관계의 프레임 속에서 중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로 여겨왔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이 이러한 두 개의 고리를 끊고 상호 불신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외교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신형대국관계 구상이 만나서 신뢰자산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중국인들의 밀통적신(密通積信·은밀히 소통하며 신뢰 구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중국의 신뢰는 사람에 의존하는 인(人)적 요소가 강하며 마음을 열고 소통하며 인의와 상호 섬김의 정신으로 은밀하고 오래 변치 않는 우정을 그 기반으로 한다. 양국 정상이 밀통적신의 정신으로 은밀히 마음을 열고 소통하며 오래 신뢰를 쌓는다면 양국 관계는 차원이 다른 신뢰외교를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양국 정상이 미·중 간의 협력관계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결연한 인식의 공유를 통해 북핵 문제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이번 방중의 최대 현안이라고 할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은 이제 그 출발점에 있고 앞으로도 많은 곡절이 있겠지만 한·중 양국 정상 간의 변하지 않는 인식의 공유는 중요한 안전판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이번에 한·중 간에 미래 지향적인 보완적 생존관계를 위한 공동구상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중 양국은 모두 전환기적 상황에 있다. 아직 세계 경제위기가 진정되지 못한 가운데 한·중 양국은 그동안의 성공이 낳은 전환기적 성장통을 앓고 있으며 복지수요 증가와 고령화 현상에도 대응해야 한다. 특히 지속적으로 잠재성장력이 저하하고 있으며 성장속도 감소가 역동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중국은 이제 국제적인 영향력은 누리면서 비용은 지불하지 않는 거대한 개도국 상태를 졸업하고 국제 지도력을 갖추고 대국다운 처신을 해야 할 위치에 있다. 동북아에서 북한을 끌어안고 미국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기존 전략은 북한의 연이은 도발과 중국의 전략 환경 변화로 이제는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시 주석의 신형대국관계 구상은 이러한 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이제는 중국도 대국으로서의 위치에서 포용과 응분의 기여를 하면서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바야흐로 중국은 거대한 국력을 바탕으로 중국 주도의 체스를 두려는 것이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의 소명은 생존방정식과 통일방정식을 연립해 푸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불가피하게 시 주석이 두려는 중국의 체스판과 마주 대하며 협력과 각축 양면의 어렵고 복잡한 게임을 풀어야 한다. 이 연립방정식에서 미국과 중국은 상수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번에 한·중 정상 간 개인적 신뢰와 상황 인식의 공유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동북아 경제를 유지시켜온 기러기 대형의 산업관계는 최근 들어 크게 변화하고 있다. 동북아 부가가치 사슬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중국을 거쳐 동남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 경제 내부가 전환기를 지나며 위험 요소를 키워 가는 가운데 우리는 중국 의존도를 확대해 왔다. 이제 동아시아의 산업지도를 놓고 큰 판의 각축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산업지도 구상에서 북한 요소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한·중은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전 산업자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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