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교향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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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해마다 이 무렵은 졸업 「시즌」이다. 금년에 대학을 졸업하는 학사는 2만6천여명. 어느 대학은 졸업식장에서 「베토벤」의 제9번 「환희」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식장밖에는 어느때 없이 조화장수들이 성시를 이룬다. 그 조화를 목에 두른 학사의 표정이라니, 모과 (목과)를 깨문 얼굴들이다.
어느 은행의 신입행원이 하는 얘기다. 연수 첫 시간에 인사과장은 복창을 시키더라고한다. 그것도 한 차례가 아니고 세번씩이나」. 『고객은 왕이다. 우리는 종이다.』 한창 포부에 넘쳐있을 학사가 당하는 일 치곤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인것이다. 『국민교·중학교·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교육의 수단일뿐이다.』(에머슨·미국사상가). 실로 그는 가장 「리얼」한 교육관을 벌써 1세기전에 피력하고있다. 그러기에 「루소」(불·철학자)는 인간에게는 2개의 탄생이 있다고 설교한다. 『그 하나는 이세상에 태어나는 탄생, 다른 하나는 생활에 들어가는 탄생.』 말하자면 69연생 학사들은 제2의 탄생을 지금 맞은 셈이다.
그들은 이제야 「훌륭한 인간상」의 가능성을 가지고 이 사회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명심할것은, 결코 아직은 누구도 「훌륭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두르면 안된다. 행복이나 명성은 한순간에 나타났다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제군들의 앞길에 장애가 있는 것을 기꺼이 여기라. 투쟁이 있는 것을 실로 기꺼이 생각하라.』(앙드레·모르와=불작가)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최초로 빠지기 쉬운 함정은 성공에의 탐욕이다. 그것은 과격과 독보와 만용을 낳기 쉽다. 그러나 사회는 그렇게 성급하지 않다. 성공은 결과이지, 결코 인생의 목적은 아닌 것이다.
첫봉급을 받을때 모든 신입사원들의 이마를 때리는 것은 「머니·메이킹」의 문제이다. 『머니!머니!』 그들은 멀지않아 별도리없이 「머니·메이니어」(김전광)가 된것이다. 오죽하면 「사르트르」같은 지식인도 『화폐는 나의 힘을 표현한다』고 말했겠는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힘을 얻으려하지 않고 화폐를 얻으려고 혈안이 된다.
인류의 역사는 결코 화폐의 역사는 아니다. 행복추구의 역사인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정복되는 정상』과는 다르다. 투쟁하며, 때로는 좌절하며, 때로는 벼랑을 기어오르며, 「시지프스」같은 바위를 굴리는 「파이팅·스피리트」(전의),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전부인것이다. 환희의 교향곡은 바로 전투로 향하는 행진곡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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