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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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미지즘」운동의 주역으로 또 「엘리어트」 「조이스」등 현대시의 거장들의 후견인으로 현대구미시단에 강력한활소를불어넣었던 「에즈러·파운드」가 「제임즈·조이스」(41년에사망)에게 보낸 편지와 그의 평론 「조이스론」이 지난주 한권의 서한집(영국Faber사간, 3불50선)으로나와 구미문단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것은 20세기문단의 두거인의 교우를 통해 영문학사의 한 측면을 엿볼수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이스」의실련기를 소설화한 유고 「지아코모·조이스」(동1불25선)도 동시에 출간되었다.

<문인에 재정지원>
1913년 「파운드」가 영국 「서섹스」지방에서 「예이츠」의개인비서로있을때 자기가 편집중인현대시의 「앤돌로지」에 추가할만한 시가 생각나면 추천해달라고「예이츠」에게 요청했다. 이에 대해 「예이츠」는당시 「트리에스테」에 살고있는 「제임즈·조이스」라는 이름의 「에이레」시인을 소개했다. 「조이스」는 이때단편집 「더블린시민」과 「젊은 저술가의 초상」을끝냈으나 아직 무명의 작가에 지나지않았다.
예술에대한 헌신을 빼고는 공통점이라곤 별로 찾아볼수없는 20세기 문단의 이 세거인이 이처럼 대수롭지않은 계기로 친근해졌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흐뭇한 이야기가된다.
이때부터 「파운드」는 「조이스」와 「엘리어트」뿐아니라 「윈담·루이스」 「윌리엄·칼로스·윌리엄즈」를포함한 많은문인들에게 정신적인 격려를보냈으며 돈이있을때는 기꺼이 재정적인 지원도아끼지않았다.
이시대에 「파운드」는 「시카고」 「뉴요크」 「런던」 「파리」를 정점으로 한현대문학운동의 총수로 군람하고있었다.
그와같은 역할에 너무열성을쏟은동안 그는 자신의 창작활동을 게을리하게까지 되었다.
오히려 「조이스」의 경우 자기에대한 「파운드」의후원을 고맙게여긴것은 사실이나 「조이스」특유의경멸을 동시에보낸것같다.
「조이스」가 『「피네간」가의문상』집필에서 시작되는 그의 난해한형식에 몰두하면서 부터 두사람 사이는 점점멀어져갔다.

<인간기피 증상도>
이들의 결별에는 「파운드」쪽에서 일어난 애석한, 변화도 크게작용했다. 차츰 그에게는 편집광적인 인간기피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당시 자기가 몰두하고있던 단편적인 경제이론에 동의하지않는 모든사람에대해 분노를 폭발시키곤했다.

<침묵속에 위엄이>
그가 40년 「파시스트」에 동조하여 「로마」방송을 통해서 그들의 선전을 담당하게 된것도 어쩌면 그러한 인간기피증에서 솟아난 과대망상증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런데 요즘와서 「파운드」의 이적행위를 들고나오는것은 악취미처럼 취급되는 경향이생겼다. 하지만 그가 「파시스트」에 동조한 사실을 대수롭지않게 보거나 또는한술 더떠서 그것때문에그가 15년동안 옥살이를했다고 해서 그를 순교자취급하는것도 우습다.
「파운드」자신도 자신의 행동이 옳지 못했음을시인하고 있다.
2년전 이태리의 「라팔로」에있는 「파운드」의 거처를 찾았던 한 영국기자는 그가 지금 거의완전한 침묵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보도한바있다. 그는 참회하고 있는것일까? 절망하고있는것일까? 혹은 그 많은 언어를 지껄인후 기진맥진해있을것일까. 여하간 이기자는 「에즈러·파운드」미년의 침묵은 위대한 위엄을 갖추고 있더라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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