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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가 박근혜·시진핑에게 속삭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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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남정호
순회특파원
글로벌협력 담당

‘황량한 산꼭대기. 한 발만 헛디뎌도 천길 낭떠러지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이곳에서 고독한 두 지도자가 마주한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승부. 산 밑엔 지켜보는 수많은 눈이 번뜩인다.’

 ‘정상회담(summit meeting)’이란 용어를 만든 건 영국의 명재상 윈스턴 처칠이다. 그가 이 말을 처음 썼던 당시 정상회담은 이런 분위기였다.

 냉전이 한창이던 1950년 2월 그는 소련 고위층과의 회동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정상에서의 회담으로 사태가 악화될 거라는 얘기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연설한다. 정상회담이란 용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국내에선 ‘EU 정상 모임’처럼 국가수반의 뜻으로 변했지만 ‘정상’의 원 뉘앙스는 산꼭대기다. 재치 넘치는 처칠이 등산 용어와 외교를 접목시켜 정상회담이란 신조어를 창조했다. 본인 설명은 없지만 그 무렵 영국에선 에베레스트 도전이 큰 화제여서 여기서 영감을 얻은 걸로 사가들은 추정한다.

 그렇다면 산꼭대기 담판의 성공 조건은 뭘까. 정상회담의 대가 데이비드 레이놀즈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보좌진의 치밀한 준비와 협력’을 꼽는다.

 물론 정상회담의 주인공은 국가수반들이다. 화려한 조명은 이들 몫이다. 27일 한·중 정상회담도 필시 그럴 거다. 화사하고 기품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 중국 대륙은 환호할 것이고 한국 언론도 부드러운 표정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대서특필할 게다.

 그러나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면 곤란하다. 정작 중요한 건 무대 뒤 참모들 간의 협력과 교감이다. ‘죽의 장막’을 걷어낸 1972년 닉슨-마오쩌둥(毛澤東) 간 미·중 정상회담이 대표적 성공 케이스다. 닉슨 밀사였던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은 71년 7월 파키스탄에서 극비리에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러곤 48시간 베이징에 머물면서 17시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마주 앉았다. 이조차 미진했는지 그는 10월 베이징으로 돌아가 일주일 더 체류한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키신저는 닉슨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69년 1월부터 3년간 이 역사적 만남을 대비했다고 한다.

 역으로 엉성하게 차려진 정상회담은 망하기 십상이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과 막 취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이 그랬다. 김 대통령은 부시에게 햇볕정책의 중요함을 하루빨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여 부시의 성향도 제대로 파악 못한 채 한 수 가르치려 들었다. 김 대통령은 “김정일도 말귀를 알아들으니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자 부시는 “국민을 굶겨 죽이는 김정일은 나쁜 사람”이라며 들은 척도 안 했다. 김 대통령의 얼굴은 벌게졌고 정상회담은 대참사로 끝났다. 결국 외교부 내 최고의 미국통으로 꼽히던 반기문 당시 차관이 분루를 삼키며 옷을 벗어야 했다.

 한·중 정상회담까지 이제 사흘. 얼마 남지 않았지만 실무진은 막판까지 표현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부드러운 남자로 통하는 시 주석이지만 국익이 걸린 문제엔 무섭게 강경해진다. 2009년 멕시코 방문 때 화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평소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거칠기 짝이 없는 표현을 써 세상을 놀라게 했다. 중국 인권문제에 대한 서방 측 비난을 염두에 두고 “배부르고 할 일 없는 외국인이 중국의 결점에 대해 왈가왈부한다”고 쏴붙인다.

 정상회담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부 수뇌가 공을 놓치면 그 뒤엔 골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딘 애치슨 전 미 국무장관의 말대로 여기서 어그러지면 주워 담을 길이 없다.

 준비 못지않게 중요한 건 이행이다. 말만 번지르르하면 뭐하나. 합의된 사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환율 문제가 부각됐던 2010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가 끝나자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자화자찬했다. “이번 회의에서 이뤄진 합의를 통해 환율전쟁에서 벗어나게 됐다”며 “이는 역사적 성과”라고. 그러나 정확히 1년 뒤 “서울에서 합의된 국제통화제도 개혁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보고서가 쏟아진다. 용두사미였단 얘기다.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에서 사막의 여우는 왕자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란다.”

남정호 순회특파원·글로벌협력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