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서울시향 마스터피스 시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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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시향 6월의 키워드는 ‘체코’였다. 2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마스터피스 시리즈는 작곡가·지휘자·연주자 모두 체코 출신이었다.

 첫 곡 ‘영리한 새끼 암여우 모음곡’에선 예상과 달리 체코의 흙 냄새가 그리 진하지 않았다. 곡이 지닌 동화적인 성격과 지휘자 야쿠프 흐루샤(32)의 개인적인 역량이 더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야쿠프는 첫 곡부터 악단을 사로잡는 데 비범한 모습을 보여줬다. 연주가 끝난 후 쏟아진 박수갈채는 악곡에 대한 완벽한 이해보다 객원답지 않은 통솔력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호른 협연자인 라데크 바보라크(37·사진)는 관악계에선 유례를 찾기 힘든 신동이다. 열여덟에 명문 체코필의 호른 수석으로 오디션 없이 채용됐고 세계 최고인 베를린필의 호른 수석을 역임했다. 그는 요즘 솔로 활동과 자신의 이름을 딴 앙상블을 이끌고 있다. 실내악단으로 편성된 서울시향과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 3·4번을 협연하기 위해 그가 무대에 오르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세계 최고의 호른 주자’를 향한 박수는 이례적으로 크고 길었다. 바보라크는 첫 음부터 최고의 호른 주자임을 증명했다. 클래식 음악 초심자가 들었다면 ‘호른이 이렇게 따뜻한 소리를 내는 악기였나’ 혹은 ‘연주하기 쉬운 악기’라는 터무니 없는 오해를 할 법도 했다.

 인터미션 후 시작된 호른 협주곡 4번 3악장 카덴차(독주악기의 기교적인 즉흥 연주)에선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듯 누가 들어도 결코 쉽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초절기교를 선보였다. 이 카덴차도 바보라크 자신이 쓴 것.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편곡해 호른으로 연주한 음반에서 들을 수 있었던 경이로운 폐활량이 실연으로 재연되는 광경에선 절로 경탄이 터져 나왔다. 인터미션을 전후해 홀 안팎에선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호른 전공자로 보이는 그들의 한숨은 나의 그것과는 달리 절망감의 토로처럼 들렸다.

 마지막 곡인 R 슈트라우스의 ‘틸 오이렌 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은 서울시향을 꾸준히 즐겨운 팬들에겐 기념비적인 연주였을지도 모르겠다. 곡 후반부의 요란법석 속에서도 금관은 힘자랑에 그치지 않고 경묘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다. 클라리넷을 중심으로 한 목관악기는 사형 장면에서도 이 곡이 장난꾸러기를 주인공으로 한 교향시임을 상기시키려는 듯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관악기에 묻혀 들리지 않는 순간이 있었지만 투명하면서도 쌉싸래한 톤을 구사한 현악기 역시 수준급이었다. ‘객원’ 야쿠프의 통솔력도 대단했지만 이에 반응하는 서울시향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다.

최윤구 (음악평론가·국민대 강사)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최윤구 음악평론가)

너무나 쉽게 호른을 연주한 바보라크. 꽤 쉽게 난곡을 소화한 만만치 않은 서울시향.

★★★★(강기헌 기자)

호른을 마치 리코더 불 듯 자유자재로 다루는 라데크 바보라크의 묘기 대행진을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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