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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세상을 바꾼 싱크탱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한국 정치에 싱크탱크(정책연구소) 경쟁이 본격화할 분위기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19일 자신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창립하면서다. 내일의 이사장을 맡은 최장집 전 고려대 교수는 “대안정당의 이념적 자원을 ‘진보적 자유주의’로 설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싱크탱크는 물론 앞으로 창당 가능성이 큰 ‘안철수 신당’의 방향을 알려주는 발언이다.

새누리당의 여의도연구소와 민주당의 민주정책연구소도 조직을 경쟁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실력과 독자성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정당의 선거전략 수립이나 공약 개발 기능을 넘어 다양한 정책 개발을 통해 의회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어서다.

하지만 한국의 싱크탱크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숫자도 총 35개밖에 안 되고 예산이나 기능도 새 발의 피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 연구(TTCSP)’가 지난해 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싱크탱크는 2011년 7월 현재 전 세계 182개국에 6545개가 있다. 가장 많은 미국은 1815개나 된다. 워싱턴DC에만 393개가 몰려 있다. 그 다음인 중국이 425개, 인도가 292개, 영국이 285개다. 한국은 그리스·헝가리·불가리아와 비슷한 숫자에 그친다.

싱크탱크는 원래 ‘제국(帝國)’ 경영의 산물이다. 가장 오래된 싱크탱크가 1831년 설립된 영국 왕립국방안보연구소(RUSI)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제압하고 두 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낸 웰링턴 장군이 군사전술 연구를 위해 세웠다.

1884년 창립된 영국 페이비언협회도 일종의 싱크탱크다. 수준 높은 토론을 거쳐 사회발전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지적 사회주의 운동을 벌인 단체다. 경제학자 존 케인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조지 버나드 쇼 등이 회원이었다. 혁명보다 점진적인 사회개혁과 계몽을 통해 권력·부·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단체로 영국 노동당의 바탕이 됐다. 최저임금제·복지제도 등 수많은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미국에선 1916년 워싱턴에 문을 연 브루킹스연구소가 효시다. 로버트 브루킹스의 기부로 탄생한 초당파적 연구센터다. 2012년 예산이 8890만 달러(약 1026억원)다. 한 해 80억원을 쓰는 여의도연구소나 30억원을 들이는 민주정책연구소와는 체급 차이가 상당하다.

TTCSP가 전 세계 120개국의 학자·기부자·언론인 등 1500명에게 의뢰해 싱크탱크 순위를 매긴 결과 브루킹스연구소가 최고로 선정됐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외교관계협의회(CFR),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랜드연구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헤리티지재단, 케이토연구소, 우드로윌슨국제센터, 미국기업연구소 등이 미국 10대 연구소에 들어간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싱크탱크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군사자문을 위해 생기기 시작했다. 46년 문을 연 랜드연구소가 대표적이다. 싱크탱크라는 말도 2차대전 중 전략가들이 전쟁계획을 짜는 방을 가리키는 속어였는데 종전 뒤 군사자문 기구를 일컫는 언론 용어로 굳어졌다. 70~80년대 냉전 시대의 절정기에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나라를 지킬 군사·외교·경제 분야의 전략자문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제 나라를 지키고 세상을 바꿀 정책자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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