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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거듭했으나 웅크린 개구리 옆모습은 그대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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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호 23면

1 1963년 데뷔한 1세대 911(왼쪽)과 현재의 7세대 911(오른쪽). 덩치는 다소 차이 나지만 동그란 눈망울과 웅크린 개구리 같은 옆모습은 고스란히 겹친다.

포르셰의 간판 스포츠카 911이 올해로 탄생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18일 이를 기념한 특별전이 열고 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주펜하우젠의 포르셰 박물관을 찾았다. 포르셰는 5600㎡ 규모의 전시관 한쪽에 부스를 꾸몄다. 911 디자인의 원형이 됐던 754를 시작으로 세대별 911을 전시했다. 개인 소유의 한정판과 컨셉트카도 자리를 빛냈다.

탄생 50주년 맞은 포르셰 간판, 스포츠카 911

911은 63년 가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데뷔했다. 외주 설계만 하던 포르셰가 48년 자체 브랜드로 처음 선보인 356의 후속이었다. 911은 배기량을 키우는 한편 상시 사륜구동(AWD), 카브리올레(지붕을 여닫을 수 있는 차), 타르가(뒤 유리를 그대로 둔 채 지붕만 떼어낼 수 있는 차) 등 다양한 모델을 선보이며 반세기 동안 진화를 거듭해 왔다.

2~3 1세대 911(2)과 7세대 911(3)의 실내. 반세기 동안 이룬 진화의 폭을 엿볼 단서다. 그런데 사실 진짜 혁신은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많이 스며들었다. [사진 포르셰]

특별 부스에 전시된 역대 911은 완벽한 관리 상태를 뽐냈다. 한자리에서 세대별 911을 저울질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덩치는 부풀었다. 동시에 뒷좌석 크기와 공간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도 많았다. 수평대향 6기통의 엔진 형식, 뒷바퀴와 뒤 범퍼 사이의 엔진 위치, 웅크린 개구리 같은 옆모습이 대표적이다.

포르셰는 50주년 기념 911도 전시했다. 뒷바퀴 굴림이지만 사륜구동 911의 넓은 차체를 썼다. 엔진은 수평대향 6기통 3.8L로 400마력을 낸다. 독특한 디자인의 ‘훅스’ 휠, 직물과 가죽을 씌운 시트, 크롬 장식 등 1세대 911의 특징을 담았다. 올가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식 데뷔한다. 포르셰는 이 차를 911 탄생연도와 같은 1963대만 생산할 예정이다.

박물관 투어를 마치고 길 건너편 공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911 제작은 보디숍에서 시작된다. 철판을 찍고 용접하는 등 시끄럽고 거친 작업이 전부 여기서 이뤄진다. 그러나 취재는 그 이후 공정에만 허락됐다. 완성된 차체는 큰길 사이의 6층 건물 둘을 잇는 브리지를 건넌다. 은빛 보디가 반짝이는 911이 구름다리를 느릿느릿 지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브리지를 건너와 도장을 마친 차체는 조립공장의 2층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도어를 떼어낸 뒤 한 대씩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오른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서부터 한 층씩 내려오며 완성된다. 주펜하우젠 공장의 조립라인은 총 189개 공정으로 나뉜다. 포르셰는 각각의 공정을 ‘워크스테이션’이라고 부른다. 직원들은 55분 일하고 5분씩 쉬며 하루 8시간 일한다.

공장의 컨베이어 라인은 1분에 1m의 속도로 흐른다. 필요한 부품은 5분마다 공급된다. 한 공정당 소요시간은 3분30여초. 한 층씩 내려갈 때마다 차는 먼저 층의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최신 시설이 그득한 공장이지만 여전히 사람 손 타는 공정이 많았다. 자동화가 불가능해서가 아니다. 생산대수를 감안할 때 과다한 투자비가 들기 때문이다.

포르셰 최초의 자체 브랜드 스포츠카
개인 맞춤 제작공정도 둘러봤다. ‘포르셰 익스클루시브’라고 부른다. 소가죽은 알프스 목초지에서 방목해 기른 오스트리아산을 고집한다. 상처나 모기에 물린 자국이 없기 때문이다. 가죽은 소 한 마리에서 벗겨낸 모양 그대로 염색해 가져온다. 가죽은 한 장씩 품질검사를 거친다. 숙련된 장인이 육안(肉眼)만으로 흠집 있는 부분을 가려 표시한다.

깐깐한 검사를 거친 가죽은 기계로 정교하게 오린다. 그리고 장인의 수작업을 거쳐 911의 뽀얀 속살로 거듭난다. 작업 범위엔 딱히 제한이 없다. 대시보드에서 공조장치의 얄따란 핀, 시트벨트의 버클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거의 모든 부품에 가죽을 씌울 수 있다. 별다른 도구를 쓰는 건 아니다. 상아로 만든 밀대와 커터, 가위, 핸드 드라이어 정도다.

911의 뒤안길은 곧 포르셰 가문의 역사였다. 창업자 페르디난트뿐 아니라 아들과 손자의 업적이 두루 스민 탓이다. 47년 7월 창업자의 아들 페리는 아버지가 개발한 비틀을 밑바탕 삼아 356의 설계를 마쳤다. 포르셰 최초로 자체 브랜드를 붙여 만든 스포츠카였다. 전쟁 후 소비심리가 살아나면서 356의 인기에 불이 붙었다. 페리는 옳다거니 후속 개발에 나섰다.

911의 디자인은 창업자의 손자이자 페리의 장남 알렉산더 포르셰가 맡았다. 목표는 4인승, 4도어 세단. 그러나 페리의 성에 차지 않아 보조 개념의 뒷좌석을 갖춘 스포츠카로 바꿨다. 63년 가을 포르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901을 선보였다. 하지만 양산하며 911로 바꿨다. 푸조가 가운데 ‘0’이 들어간 세 자릿수 이름을 쓸 권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첫 911은 수평대향 6기통에 1991㏄·130마력 엔진을 꽁무니에 얹고 최고시속 210㎞를 냈다. 원조 911의 엔진을 개발한 주인공은 현 폴크스바겐 감독위원회 의장 페르디난트 피에히다. 그는 포르셰 박사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911엔 할아버지가 고안한 구조, 아들의 설계, 친손자의 디자인, 외손자의 엔지니어링이 골고루 녹아들었다.

하지만 정작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911을 보지 못했다. 911 개발이 갓 시작될 무렵인 51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911은 반세기 동안 한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따라서 개발명으로 각각의 세대를 구분한다. 가령 1세대는 901, 2세대는 911 G-시리즈, 3세대는 964, 4세대는 993, 5세대는 996, 6세대는 997인 식이다. 현재의 911은 개발명 991의 7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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