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알의 희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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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알의 희비란 추첨된 나무알 한 개로 기쁨이나 슬픔이 빚어짐을 말함이리라. 한알의 희비는 어린이뿐 아니라 그대로 학부형 자모를 비롯 일가친척과 직접 가르치고 길러낸 스승의희비와도 상통한다. 또 한알의 희비는 이를 담당한 문교당국에도 없지않으리라. 하기야 이런추첨에의한 무시험제도는 짧지 않은 새교육 역사상 혹은 세계적으로도 그유례를 찾을수 없는 전대미문의 혁신적 입시개선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추첨에 의해서 학교가 결정된 이 밤에도 혹은 통학거리가 멀다하여, 변두리에 있다하여, 그리고 신설된 학교라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나 실력의 우열이 뒤범벅된데 따르는 부작용을 지레 염려하는 사람이 한 둘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 다시 생각해보라. 그렇다고 나어린 나라의 새싹들을 과외공부에 짓눌려 좀먹고 멍들게하며 누적된 고질로 시들고 메마르게 할 수 있겠는가. 어린이는 어른들의 노리개가 아니며 체면과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부속물도 아닐지니 일류병에 사로잡힌 부모들을 위해 희생될수 없는 것이다.
새봄의 야들야들한 속잎새와 같은 어린이를 거듭 채점 인생이나 점수인생으로, ○×인생이나 기계인간으로 되돌릴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추첨에 운명을 걸고 다소곳이 좋은 학교가나오길 염원하는 애처로운 모습을 참고 견딜지언정 국민보건의 기반을 더 이상 동요시킬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런 제도에서 파생될지도 모르는 부작용과 헛점은 시정되고 개선될 것이다. 우리는이것이 80년대 중학의무교육을 지향하는 첫작업이라는데 더욱 큰기대를 갖는다.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 땅에 썩지 않으면 큰수확을 거둘수 없듯이 수많은 나무알의 슬픔이 쌓이는 곳에 중학교 발전의 꽃을 피우는 계기를 이루며 향상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원흥균<서울교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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