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한국-미국 거주 한태일씨 인터뷰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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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라스베이거스 리뷰저널 제공

북한에서 19년, 한국에서 26년, 이후 30년 넘는 세월을 미국에서 보냈다. 세 나라를 두루 경험한 한태일(83)씨와 장거리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그는 '선생님은 세 나라 중 어디가 제일 좋으세요?'라는 질문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한국도 좋고 미국도 좋지."

한씨는 인민군 출신이다. 평양의과대학 2학년 재학 당시 한국전이 발발하면서 인민군에 징집된 한씨는 군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1950년 10월, 미군의 평양 입성시 미군에 의해 포로가 됐고 부산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3년을 보냈다.

포로 가운데 간부 역할을 맡은 한씨는 포로 권익보호에 앞장섰으며 북한 측이 주장한 '포로 전원송환'을 반대하고 유엔 측의 '포로 자유의사 송환'을 지지했다.

이는 1953년 6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 조치로 3만 명에 달하는 반공 포로들이 한국군에 입대, 전시 한국군 전력을 크게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한씨는 이후 주한 미 8군에서 통역관 겸 수사관으로 장기간 근무했다.

미 국무부 초청으로 1974년 미국에 이주한 그는 증권업 관련 면허를 취득해 사업을 벌였으며 LA에도 거주한 바 있다. 현재 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으며 '거제도 포로수용소 비사 2탄'의 집필을 마친 상태다.

그에게 6월 25일은 특별한 날이다. 특히, 올해는 정전 60주년이라 더욱 그렇다. 복잡한 감정이 마음 속에 교차하겠지만 그는 간단하게 "감개무량하다"고 표현했다.

평범치 않은 삶의 여정을 밟아온 한씨는 유명인사다. 2010년 10월에는 한국전쟁과 포로수용소 생활을 생생히 담은 영문판 '고독한 영웅(Lonesome Hero)'을 냈다. 이 책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 보급돼 화제를 모았다. 지난 2011년에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비사'란 제목의 한국어판도 냈다. 이 책은 지금도 교보문고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는 이 책에 대해 "한국전쟁사와 역사 속에서 사라질 뻔했던 거제도 유엔군 포로수용소내의 숨겨진 비사들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고 자평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도 한씨는 유명인사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가 타인종 언론매체에 실렸고 방송국에서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영하기도 했다.

한씨는 "누군가에게 날 알리고 싶어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포로들 중 아마 반 이상은 돌아가셨을 것이다. 책의 내용이 역사적인 문서로 남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과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미래가 궁금해졌다. 남북관계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그의 대답은 확고했다. "남한 주도의 평화통일"이다. 한씨는 "1985년까지만 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 북한은 망한 나라다. 김일성 사망 전에 이미 사회주의는 끝났다. 반면, 남한은 발전을 거듭했다. 이제 남한의 주도 아래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평화협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한씨는 "평화협정을 체결해 북한의 핵을 폐기시켜야 한다. 북한은 미련없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남북한, 중국과 함께 평화협정을 체결해 한반도의 평화를 법적, 국제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며 "절대 다수의 우리 민족이 강력히 희망하고 갈망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긴장이 아닌 긴장완화, 대결이 아닌 협력, 전쟁이 아닌 평화"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어 "무력은 파괴와 살상만 부를 뿐 남북통일을 이룰 수 없음을 6·25라는 값비싼 경험을 통해 배우지 않았느냐"며 "대립과 전쟁으로 얼룩진 분단된 조국을 다음 세대에까지 물려줘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박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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