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엔 다 있다 … 도시의 편리함, 자연의 편안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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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밴쿠버섬 팍스빌 해변. 팍스빌에서는 아침 썰물 시기에 끝없는 갯벌이 펼쳐져 다양한 해양생물들을 만날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스탠리파크(Stanley Park)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왼편으로 마차의 말발굽 소리가 경쾌하게 보조를 맞추고, 오른편 해안가에선 거위들이 줄을 지어 물살을 가른다. 바다 너머로 높다랗게 치솟은 그라우스(Grouse) 산과 시가지의 고층 빌딩을 배경으로 수상 비행기가 물을 차고 날아오른다. 원시림의 깊은 숲길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해안도로를 달리면 캐나다에서 가장 긴 다리인 라이언게이트브리지(Lions Gate Bridge) 너머로 넓은 바다 위 흰 돛단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도심에서 30분 이내 거리 어디서든 숲과 호수, 산과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 여기는 캐나다 밴쿠버다.

힐링을 위한 여행이라면 도시의 편리함과 자연의 편안함이 공존하는 곳이 적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밴쿠버는 이 두 가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인구 60만 명으로 브리티시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면서도 스탠리파크나 잉글리시베이(English Bay), 그라우스 산, 캐필라노(Capilano) 협곡 등의 대자연을 품고 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자연의 품으로 달려들어 지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머무른 내내 화를 내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도시의 그 흔한 경적 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1 밴쿠버섬의 작은 해안마을 코위찬 베이의 아기자기한 카페.
2 코위찬 베이와 이웃한 슈메이너스는 마을 전체가 40여 점의 벽화로 장식돼 야외 갤러리를 방불케 한다.
3 밴쿠버의 초대형공원 스탠리파크에선 자전거를 타고 원시림을 만나볼수있다.

도심속의 힐링 코스 스탠리파크

도심 속 힐링의 집약체는 스탠리파크다. 밴쿠버 북부에 위치한 면적 4㎢에 달하는 공원으로 뉴욕의 센트럴파크보다 넓다. 지난 8일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공원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자전거 투어를 떠났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공원의 중심부로 들어서니 수백 년 된 적색삼나무와 더글라스퍼(외국산 소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선 원시림이 펼쳐졌다. 캐나다의 나무들은 길고 곧지만, 꼭 그런 나무만 자라고 있는 건 아니다. 1800년대 후반에 대량 벌목된 나무들의 그루터기가 곳곳에 남아 있는데, 이 그루터기 속 공간에 씨앗들이 날아들어 새로운 나무로 자라난다. 밴쿠버 사람들은 그래서 이 그루터기를 ‘간호사 그루터기(Nurse Stump)’라 부른다.

스탠리파크 맞은편으로는 그라우스 산이 보인다. 해발 1231m의 이 산은 여름엔 하이킹, 겨울엔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곳에서는 밴쿠버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자락에서 곤돌라를 타고 산 중턱까지 오르니 울타리 안에 살고 있는 쿨라와 그라인더라는 수컷 곰 두 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독수리와 부엉이가 재롱을 부리는 버드쇼, 벌목공들의 흥겨운 도끼쇼도 볼 만했다. 스탠리파크 서남쪽 끝자락에는 잉글리시베이가 시원스레 펼쳐졌다. 화물선과 페리, 요트가 떠다니는 해안가에 일렬로 누운 통나무들을 등받이 삼아 태닝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밴쿠버의 매력은 단순히 보는 것에 있지 않다. 자연을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고 함께 놀 것이 즐비하다. 대표적인 게 노스밴쿠버의 캐필라노 협곡이다. 서스펜션 브리지는 자유의 여신상 어깨 높이(70m)에 보잉 747기 2대를 나란히 세워놓은 길이(137m)의 세계 최대 흔들다리다. 코끼리 96마리가 퍼레이드를 해도 될 만큼 튼튼하다고 한다. 좁은 길로 절벽 위를 걷는 ‘클리프 워크’ 역시 짜릿한 스릴을 선사했다.

시내에서 수상비행기 타고 빅토리아로

4 밴쿠버섬 빅토리아 해변에 정박된 요트들을 바라보며 먹는 꽃게 맛이 일품이다.

밴쿠버에 머물기에 앞서 밴쿠버 시내에서 수상비행기를 타고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주도(州都) 빅토리아(Victoria)를 방문했다. 빅토리아에서 다시 1번 도로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 서북쪽으로 이동했다. 빈티지한 카페가 많은 코위찬 베이와 벽화 마을인 슈메이너스를 들러 마지막으로 팍스빌(Parksville)의 해안 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야외에서 해산물 바비큐를 먹은 뒤 해안가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스모어(S’more·캠핑용 간식)를 만들어 먹으니 캠핑을 하는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이튿날 오전 썰물시간에 맞춰 생태 해설가와 함께 끝이 보이지 않는 갯벌을 하염없이 걸었다. 발끝에 닿는 작은 고동이며 성게, 해초의 이름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문득 슈메이너스 마을에 새겨져 있던 산림사업가 H R 맥밀런의 인용구가 떠올랐다. “이름을 붙여주는 것과 그것을 좋게 만드는 것(Making a name and making it good).” 이런 철학이야말로 밴쿠버 사람들을 자연의 발견자이자 동반자로 만들어 준 힘의 원천일 것이다.

◆ 여행 정보=서울에서 밴쿠버까지는 직항으로 10시간가량 걸린다. 비용을 아끼려면 일본항공(kr.jal.com)으로 도쿄 나리타를 경유하는 게 좋다. 직항에 비해 비행시간은 한두 시간 늘어나지만, 가격은 40만원 정도 저렴하다. 02-757-1711. 주한 캐나다관광청(keepexploring.kr)과 브리티시컬럼비아 관광청(HelloBC.co.kr) 홈페이지에서 밴쿠버 여행 정보를 한국어로 볼 수 있다. 주한 캐나다관광청 02-733-7790.

글·사진=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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