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지원 놓고 나토 '제각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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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라크 사태를 둘러싼 서방 진영의 분열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벨기에가 10일 이라크전 발발시 터키를 방어하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군사지원이 필요하다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한 데 이어 프랑스.러시아.독일 등 3개국은 유엔 무기사찰 강화를 주장하는 공동성명을 발표, 대 이라크 공격을 서두르고 있는 미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터키는 나토 54년 역사상 처음으로 개별 회원국의 안보 위협에 대한 동맹국 전체의 협의를 규정한 나토 헌장 제4조를 발동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프랑스 등 3개국의 공동성명은 유엔 안보리에서 이라크 공격을 승인하는 2차 결의안 통과를 저지할 수 있다는 미국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고 11일 보도했다.

◇나토, 최악의 분열=브누와 다보빌 나토 주재 프랑스 대사는 터키 지원안 통과 마감 시한을 30분 앞둔 10일 오전 9시30분(현지시간) 조지 로버트슨 나토 사무총장에게 "이 시점에서 이라크 사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며 거부 의사를 전달했다.

뒤이어 벨기에와 독일도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나토에 대한 미국의 이라크전 지원 요청이 사실상 부결됐다. 니컬러스 번스 나토 주재 미 대사는 즉시 "나토가 신뢰의 위기에 빠졌다"고 선언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라크에 대한 군사력 동원 여부를 놓고 나토 역사상 가장 심각한 분열이 발생했다"면서 "동맹의 힘과 신뢰성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다.

반면 프랑스 전략연구재단의 프랑수와 하이부르 소장은 "냉전 이후 존재이유를 상실한 나토가 미국의 일방주의적 행동으로 종언을 맞았다"고 지적했다.

◇"전쟁은 최후 수단"=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파리 엘리제궁에서 10일 "무력은 최후의 수단이며, 러시아.독일.프랑스 3국은 평화적인 이라크 무장해제를 위해 모든 기회를 부여하려 한다"면서 3국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3국은 "유엔 결의 제1441호의 틀 안에서 사찰을 지속하고 사찰단의 인적.기술적 능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것을 지지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외무장관은 "유엔 사찰단에 미라주4 정찰기를 대여할 수도 있다"면서 "사찰 인력을 3배로 늘릴 것"을 제안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터키 방어 계획을 거부한 데 대해 "도덕적 접근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동맹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의견을 같이 할 수는 없다"면서 "현 단계에서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천명했다.

◇"프랑스 없이 재논의"=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곧바로 프랑스를 겨냥해 "프랑스의 근시안적인 태도에 실망했다"면서 "이는 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필요하다면 나토 밖에서도 터키 방어 계획을 진행시킬 것"이라며 독자행동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또 "나토 19개 회원국 중 3개국만이 반대했다"면서 "이들은 나머지 나토 동맹국들로부터 고립됐다"고 비난했다.

한편 리처드 펄 미 국방부 수석고문은 "프랑스는 나토의 군사활동에 불참 해왔기 때문에 결정권한이 없다"면서 "프랑스를 배제한 상태에서 터키 방어계획을 다시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터키의 나토 헌장 제4조 발동이 수용될 경우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전체 동맹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한 나토 헌장 제5조에 따라 터키에 대한 지원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분석했다.

정효식 기자, 외신종합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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