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시크릿 뮤지엄' 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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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시크릿 뮤지엄’ 전에 나온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1814, 루브르박물관 소장·부분)를 담은 영상 에서는 이 그림을 위해 작곡된 빈센트 세갈의 첼로 연주곡이 흐른다.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언젠가는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9월 22일까지 열리는 ‘시크릿 뮤지엄’전은 오래 전 미디어 선각자들의 예언이 집대성된 것 같은 자리다. 사진·동영상 등 발전된 뉴미디어는 고전 미술작품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룬다. 이 전시는 레오나르드 다빈치부터 반 고흐까지 서양미술사상 중요 작가의 작품을 이전과는 다르게 보여준다. 소위 ‘원화 없는 명화전’이다.

 사진의 등장과 함께 1930년대 이미 발터 벤야민은 원작의 기술적 복제가 갖는 장점 두 가지를 지적했다. 우선 기술 복제는 “렌즈로는 포착되지만 인간의 육안에는 미치지 못하는 원작의 모습들을 강조해서 보여줄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전시는 정확히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도 벤야민이 상상도 못했던 놀라운 방식으로. 관람객은 원화 대신 고해상도 모니터, 대형 멀티스크린, 프로젝션 매핑, 3D 멀티스크린 등 최첨단 미디어를 통해서 작품을 보게 된다. 이를 통해 원작 앞에서도 사실은 보기 힘든 작품의 디테일과 숨은 의도를 보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84)의 영상은 원작을 여러 번 촬영해 멀리 보이는 기둥과 인물들 사이, 인물과 인물들 사이의 조각적 공간감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아마 다비드가 살아나서 보았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거였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벤야민은 한꺼번에 모으기 힘든 원작을 복제를 통해서 한 공간에 모을 수 있다고 했다. 1947년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 프로젝트로 표현되기도 했었다.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루브르·프티 팔레·오르세 등 프랑스 주요 미술관의 대표작들이다. 물리적으로 한 자리에 볼 수 없는 작품을 디지털을 통해 한곳에 모았다.

 원화의 아우라를 대신하는 것은 엄청난 양의 정보다. 전시는 ‘선·색·빛·그림자·시간·원근법·마티에르·감정’ 등 8개 섹션으로 서양미술사를 바라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를 제시한다. 작품마다 3분 내외로 상영되는 영상물은 작품을 오랫동안 연구했던 전문가들의 시선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원작의 ‘말할 수 없는 감동’은 첨단 미디어를 통해서 ‘말할 수 있는 정보’가 됐다.

 전시는 2010년 파리시립미술관 프티 팔레에서 성공을 거둔 전시의 한국 증보판이다. 원래 전시에 젊은 현대 미디어 작가들의 작품이 추가됐다. 세계적 명화가 모여 있는 도시 파리에서 디지털 미디어로 전시를 가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는데, 그 이유가 더 놀라웠다. 좀처럼 그림에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젊은 관람객을 미술관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기획된 전시란다. 미디어만 발달한 게 아니라,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다른 감각을 가진 신인류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 멈추어 있던 그림들은 애니메이션·3D·홀로그램 등 각종 특수효과를 통해서 되살아나야 했다. 어른들은 좀 당황하고 아이들은 즐거워할 전시다. 미디어에 관해 탁월한 이해를 가지고 있던 백남준은 말했다. 미래에 “사람들은 화면에서 끊임없이 깜박이는 불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그런 미래가 문득 전시장을 찾아왔다.

이진숙 (미술평론가)

★★★★ (이진숙 미술평론가) : 미래의 기습, 정보가 감동을 주도하는 새로운 예술수용의 시대가 문득 찾아온 현장.

★★★★ (김노암 문화역서울 284 예술감독) : 움직이는 명화 속으로 소년 소녀들이 들어간다. 기술과 미술의 만남 또는 디지털시대의 미술 감상과 형식의 모색. 오늘날 지식과 경험의 학교인 미술관의 역할을 생각하게 하는 전시.

★★★☆ (권근영 기자) : ‘실물 봤다’는 인증은 불가. 명작 탄생 순간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명작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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