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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구루' 버핏도 그로스도 모르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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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성한
전 국제금융센터 원장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국채금리 상승세가 심상찮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위험 자산인 미국 주가는 사상 최고치 근방에 도달한 반면, 안전자산인 채권의 가치는 하락한 것으로 보면 간단하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지금의 국채금리 상승, 즉 채권가격의 하락은 경기회복 국면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난 4년간 미국의 세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로 금융시장에는 막대한 유동성이 풀렸다. 유동성을 등에 업고 금리는 하락했고 채권가격은 높아졌다. 이제 투자자들은 가격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채권을 내다 팔고 있고, 기대 수익률이 더 높은 위험자산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면 앞뒤가 대충 맞아 들어간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금융시장의 대가(Guru)로 명성이 높은 워런 버핏과 빌 그로스는 그간 지속돼온 채권 강세장이 끝났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로스는 30년간의 채권 강세가 종료됐다고 선언했고, 버핏도 현재 “채권은 최악의 투자처(terrible investments)이며 주식은 현재가치가 적정하다”고 평가했다. 사실 최근 채권시장의 과열은 직관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아프리카 잠비아와 르완다가 최근 5~6%대에 불과한 낮은 금리로 달러화 국채를 발행하는 데 성공한 것만 보아도 이른바 ‘채권 버블론’은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채권 버블론과 함께 채권 강세장 종료의 근거로 지목되는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문제는 성급하게 결론 짓기 어렵다. 미국 국채금리가 이에 반응해 올랐지만 문제는 정책적 지속성에 있다. 지난 4년간 이어진 양적완화를 청산할 정도로, 또 높은 금리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국의 경기회복세는 탄탄한가. 출구전략을 지속할 만큼 경기 회복세가 탄탄하다면 금융시장에서도 환영할 만한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의 지표들이 나타내는 반응은 이와 거리가 멀다. 아마도 지금까지 금융시장 회복을 이끌어온 것은 ‘경제 펀더멘털의 개선’이 아니라 ‘돈의 힘’이라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양적완화의 축소는 채권 수요의 감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채권시장 약세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금리상승세가 상당 기간 예상되는 이유다. 그러나 채권시장에서 빠져나온 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것(그레이트 로테이션)인지는 속단하기 힘들다. 미국의 주가 상승과 채권시장 약세가 미국 경제의 회복을 알리는 신호라면 그레이트 로테이션은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다.

하지만 미국 주가가 양적완화에 따른 착시효과로 상승한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주가를 떠받쳐온 ‘돈의 힘’이 약화되는 것은 주가상승 동력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양적완화의 축소가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아닌 채권·주식의 동반 약세를 불러올 수 있다는 월가 일부의 우려는 새겨들을 만하다.

 최근 수년간의 양적완화, 그리고 이의 축소 및 청산은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미답지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빠져나오는 방법도 비교 검토할 만한 사례가 없다. 이와 관련된 논의가 진행될수록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것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자본유출입이 자유로운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글로벌 자금흐름이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전환될 때 한국에 투자된 외국인 자금이 어떻게 움직일지 주목해야 한다. 한국이 신흥국으로 평가되고 있는지, 아니면 선진국으로 자리 잡은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지난 30년간 지속돼온 채권의 강세장이 종료됐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사실 워런 버핏과 빌 그로스는 2010년에도 채권 강세장의 종언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2.75%에서 지난해 7월 1.4%까지 크게 내렸다. 지금도 금리는 2010년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이들 대가의 예언과 달리 국채가격은 크게 상승한 셈이다.

국제금융시장의 대가마저도 얼마든지 빗나갈 수 있는 것이 시장에 대한 전망이다. 국제금융시장이 전대미문의 영역을 걷고 있는 만큼 신중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대응책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성한 전 국제금융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