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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고씨굴 | 첫 관광지 지정과 한국 동굴의 어제·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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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태까지 신비의 세계로만 알려진 채 일부 동굴 관계 인사들에 의해서만 탐험되어 오던 동굴이 당국의 인식으로 이제 「베일」을 벗고 많은 사람들의 관람과 국가 내지는 지역사회의 합목적적인 효용에 따른 손길이 뻗쳐지게 되었다. 이는 지난 3∼4년 간 한국 동굴 협회와 문공부가 심혈을 기울여 조사한 결과에 의한 공적이기도 하지만 동굴이 우리의 살림살이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당국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증좌라고 이방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당국의 조치를 못내 기뻐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발 기초 작업 착수>
그 첫 조치의 일단으로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진별리의 고씨동굴을 「샘플」 삼아 다목적 적인 개발에 착수하려는 의도 하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미 2백여만원의 예산을 확정지었고, 문교부는 69연도의 추경과 70년도의 본예산에 개발에 필요한 전 예산을 투입할 것을 전제로, 예산 책정의 기초 작업을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이에 따라 중앙일보사와 한국 동협은 지난 65년이래 8차에 걸친 조사의 대단원을 내리고자 연초에 마지막 종합 조사에 나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문공부는 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 완전한 개발이 이루어지기까지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한편 동굴 내부의 원형 보전을 위한 제반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구미선 18세기부터>
이밖에도 당국은 강원도 삼척군 도계읍 대이리의 환선, 관음 두 굴과 제주도의 만장굴 개발을 위한 기초 조사에 나섰다. 『외국에 비하여 늦은 감은 있다 하더라도 동굴이 갖는 특색 있는 이용도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겠다는 당국의 의도는 상당히 고차적인 것이라는 것이 동굴 학계의 여론이다.
동굴을 사람들이 이용한 것은 원시 시대 때부터라고 하나 그것은 단순히 주거지에 불과했던 것. 근대적인 의미의 이용은 18세기 「유고」의 「카르스트」 지방에서 비롯하여 「프랑스」와 영국이 관광지로 이용해 왔고 그 후 이태리 미국 등이 역시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했었다. 동굴이 하나의 학문 대상이 된 것 또한 이와 비슷한 시기부터였다고 하는데 이를 집대성하여 학문의 체계를 세운 것은 「프랑스」 학자들에 의해서다.

<생명의 기원 실마리>
동굴학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지표 상에서 자취를 감춘 제3 빙하기 이전의 생물들이 굴속에 살고 있고 그밖에도 지사학적인 면과 원시인의 생활 유적을 더듬어 볼 수 있다는 점등인데, 무엇보다도 큰 것은 생물상의 연구에 있다. 이는 급기야 생명의 기원을 풀 수 있는 보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보다 더 직접적인 이용가치를 발견한 것은 2차 대전 이후의 일. 그 첫째가 국방상의 이용도다. 핵무기의 등장으로 쌍방이 동시에 멸망하게 된다는 3차 전에 대비, 강대국들은 적의 핵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이를 최대한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들리는 바로는 중공의 핵 기지인 신강성이 거대한 동굴 지역이라는 것이고, 일본의 주간 사진 잡지 「조일 그래프」에 의하면 월맹은 정부 청사, 공장, 방송국 등을 석회암 동굴에 차려 북폭에 대비하고 있었다. 우리로서는 병기 국내 생산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는 바라 동굴에 몇 백 만년 간 쌓여 온 「구아노」를 화약 원료로 사용할 수도 있고―지하수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터인데, 석회암 지대의 관개용수 해결은 동굴 속의 풍부한 지하수가 감당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에 넣고 보면 관광 한국의 새로운 자원으로서의 「달러·박스」말고도 이용에 따라서는 더 절실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전국에 천여 개 산재>
다행히도 한국에는 석회암 동굴이 1천개소 이상(추상), 용암 동굴이 50여 개 소나 있다. 이중에 한국 동협에 의해 그 내부가 밝혀진 곳만도 석회암 동굴이 96개소, 용암 동굴이 30여 개 소이다. 석회암 동굴로서는 대이리의 환선, 관음을 위시한 대이리 동굴 지역 50만평, 경북 울진의 성류굴, 전북 익산의 천호 동굴, 영월의 고씨굴이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앞으로 완전한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몇 개소의 동굴이 더 지정 될 것으로 내다보이고 있다. 그러니까 지정된 동굴을 제외한 여타의 동굴은 문화재로 보호하거나 관광 동굴로서 개발하는 이외의 목적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주장인데, 이들에 의하면 같은 석회암 동굴이라도 각각 몇 개의 특색 있는 「타이프」가 있고 또 지역에 따른 보존 가치가 있는 것이므로 그런 특색 있는 동굴 이외는 산업 자원으로서 (양송이 재배, 양계, 비료 원료, 석재, 시멘트 원광) 또는 군사적인 목적에 따른 이용이 아쉽다는 것이다. 이 천년의 보고를 썩이는 것은 그 만큼 손해라는 뜻으로―.

<파괴하는 개발 없게>
그러나 어떤 목적을 위한 이용에도 분별 있는 손질이 아쉽다는 것이 또한 이들의 걱정이다. 몇 천만년에 거처 생성된 동굴의 내부 구조가 허울좋은 개발이라는 이름 밑에 무참히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처음으로 관광 동굴이 될 고씨굴은 전 길이가 8킬로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규모 상으로는 중급의 굴이나 짜임새와 편리한 교통편과 국내 동굴 중 가장 나이가 많다는 점(약 4억년이나 걸린 것으로 추산), 또한 동굴 동물의 다양성에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동굴에서 잡힌 동물만도 「옆새우」 「참굴거미」 등을 위시, 신종 후보가 14종이나 되고, 굴 안에는 3개소의 폭포와 10여 개 소의 궁전 같은 광장이 있고 동굴 진주, 들장미, 돌「커튼」, 돌기둥, 용머리, 탑, 부처 등의 종유석·석순·석주들의 배열과 조화가 이웃나라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추방, 용하 등의 동굴을 능가하는 곳이다.
영월읍에서 동으로 6킬로, 화력발전소를 지나 협곡을 꿰뚫고 흐르는 남한강 상류를 끼고 가면 쭝긋 쭝긋 솟은 봉우리며 절벽들이 또한 절경인데 진별리에 내려 나룻배로 강을 건너면 층암절벽 30미터쯤에 뚫어진 가로 4미터, 세로 2미터의 입구가 나선다. 그것이 고씨굴. 임란 때 앞마을에 살던 고씨들이 이 굴에 피난하였다 하여 고씨굴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글:김기문 기자|사진:김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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