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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당신은 3년 있다 나가면 그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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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논설위원

그는 상임감사다. 가끔 지면에도 등장했는데 ‘낙하산’ 사례로다. 그럴 법한 게 전공이 미국정치였다. 여의도에선 여론조사로 이름이 났고 청와대에서도 일했다. 2011년 4월 발전소 설계와 기술지원업무를 하는 한국전력기술(한전기술)의 상임감사가 됐다.

 김장수. 그의 이름이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길 시작했으니 17일 오후 산업통상자원부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보도자료 때문이다. ‘부당행위에 대한 상임감사의 입장’이란 글을 통해 원전 비리의 근원에 모든 견제와 균형장치를 무력화시키는 한국수력원자력과 그런 구조적 원인을 묵인·방치한 산업부가 있는데 막상 책임은 말단이 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궁금하긴 했다. 검찰발로 “원전비리(시험성적서 위조) 뒤엔 한전기술 직원 등 7인 회의가 있었다”고만 해서다. 한전기술이 부품업체와 비리인 줄 알고 대놓고 회의한다? 급도 아귀도 안 맞는 듯 여겨졌다.

 그래도 감사가 공개적인 반발을 하다니, 그 또한 의아했다. 2008년 발생한 일이라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곤 해도 도의상 책임이란 게 있지 않나. 그에게 물었다.

 -한전기술에선 ‘개인 의견’이라고 했다.

 “우리 직원들은 내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참을 수 없다니.

 “한수원의 공식 입장은 성적서가 위조됐는지 몰랐다는 건데 사실이 아니다. 내부 감사 결과 우리 직원이 여러 압력을 받고 위조를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고 해당 직원에게 자수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만 돌을 던질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한전기술은 사실상 한수원의 하청업체여서 한수원의 지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구조적 문제가 있는데 개인비리로만 몰아갔다.”

 실제 사건 당시 한전기술 직원이 한수원 측에 보낸 e메일이 있다. 거기엔 ‘유선상으로 보고드렸듯이… 현재 리포트론 승인이 곤란하여… 본건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 우선 지면으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고 한다.

 -상부에 이런 의견을 개진했나.

 “우리 직원들이 가면 윽박지르기만 했다. 같은 공기업인데 한수원은 수퍼갑(甲)이다. 한수원도 그러나 산업부 앞에선 고개도 못 든다. 나도 정부에 몇 년 있었던 사람이지만 관료들이 이렇게 일하면 안 된다. 민간의 갑을(甲乙)을 뭐라지만 막상 자신들이 갑일 때 가관이더라.”

 그도 개선안을 들고 청와대·산업부를 포함, 여기저기 찾아다닌 모양이다. 소통 운운한 걸 보니 별로 소용 없었지만 말이다.

 다시 그의 얘기다. “직원들이 ‘당신은 이러고 나가면 되지만 우린 어떻게 하느냐’고 한다. 사장이나 감사는 3년 있다 갈 사람이라고 산업부를 무서워한다. 나중에 보복한다는 거다. 이게 무슨….”

 그의 주장에 한계도, 뒤틀림도 있을 게다. 그가 한전기술을 ‘하청업체’라고 했지만 수퍼갑이라고 여기는 이도 많다. 하지만 분명 살 대목도 있다. 비리를 낳는 구조 말이다. 우린 “착한 사람은 좋은 일만 하고 못된 사람은 나쁜 일만 한다”고 믿는 오류에 빠지곤 한다. 단죄하면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 여긴다. 착각이다. 상황의 압력에 따라 멀쩡한 사람도 잘못을 저지른다. 그래서 제대로 된 제도가 필요한 거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그게 불비(不備)하단 거 아닌가.

 ‘꼬리 자르기’ 구태, 산업부의 나태 문제도 있다. 전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원전비리가 터져나올 때 지식경제부(산업부 전신)에 ‘감사를 활용해라. 교육부에선 현직 검사를 기용한 뒤 비리가 확 줄었다’고 조언했는데 아무 일도 안 하더라. 그간 손 놓고 있다가 산하기관에 책임을 넘기는 거지”라고 했다. 비리는 비리대로 대처하더라도 이젠 구조적 문제도 들여다봐야 한다. 그게 국민을 위한 길이다.

 참, 김 감사가 “한수원이 모를 리 없다”고 주장한 다음날 검찰이 한수원 사람 2명을 체포했다. 인과 관계는 상상할 따름이다.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