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침공에서 보인 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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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번 「업저버」지에 소련에 관해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은 것은 꼭 22년만이다.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고마운 일이다. 20여년전의 소련과 지금의 소련이 어떻게 달라졌나 고찰해 보는 것도 가치 있는 줄 믿는다. 소련의「체코」침공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소련에서는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현실에 있어서는 더욱 그럴 필요성이 있다.

<정치 계획 도외시>
그러나 「체코」침략의 바로 그 수법은 현저하게 달라졌음을 보여주었다. 「스탈린」은 1948년 「체코」를 정복하였는데 그것은 계획된 방침의 일부였던 것이다. 「체코」군은 원한다면 공격기지 구실도 할 수 있는 그의 광범한 방위 기지망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새 구주 정세를 조성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던 「스탈린」은 「체코」 지배를 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놀라울 만큼 손쉬운 방법으로 「체코」 지배에 착수했었다. 「스탈린」은 이미 눈앞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해방군을 점령군으로 개편함으로써 폴란드, 동독, 동부 오스트리아, 「헝가리」,「불가리아」와 「루마니아」를 병합하였었다.
소련은 배후에서 위협만 했을 뿐 소련 군대를 한 사람도 사용하지 않고도 소수의「체코」반역자들의 손을 통해 「체코」를 손아귀에 집어넣었다.
지난여름의 「체코」 점령과 비교할 때 이는 얼마나 힘이 적게 들면서도 실속 있는 일이었던가. 소련 공산당 제1서기 「브레즈네프」가 행동을 취하자 그는 자기가 동원하려 하지 않은 수단에 의해 아주 쓸모 없게 부서져버린 옛 상전(「스탈린」을 카리킴)의 제도를 회복시키라는 빗발치는 반발에 부딪쳤다. 「브레즈네프」의 수법은 군대를 신용하는 군사 계획을 중시해왔으나 확실한 정치 계획은 도외시한 것이었다.

<채웠다가 푼 수갑>
「브레즈네프」나 그의 동료들 중 어떤 사람도 군사 행동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모르고 있었으며 지금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징조는 없다. 그의 군사 행동은 대가가 엄청나게 비쌌다.「스탈린」은 「체코」에서 자기의 지지파가 정권을 잡자 세계의 주의를 끌지 않고 인민들을 고문·살인하였는데 「체코」인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더러운 숙청 작업의 대부분을 떠맡게 했다. 「브레즈네프」는 「스탈린」에 비하면 대담성이 적다. 이유야 어디에 있든 간에 그는 아직까지는 「체코」지도자 「두브체크」와 그의 동료들을 죽이지 않고 있다.「브레즈네프」는 옛 소련 땅에서 소련의 상투적 수법을 이용, 「두브체크」에게 수갑을 채웠으나 결국 귀국시켜버렸다. 「브레즈네프」는 「두브체크」파가 소련파의 합의를 깨뜨려 버릴 것을 기대했으나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당황했다.

<「스탈린」은 못된다>
그는 「두브체크」일파를 죽일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무슨 뜻이냐 하면 소련 정부가 말로 어떻다고 표현할 수 없는 집단 지도제 즉 합동으로 일하면서도 서로 분열 상태에 있는 집단 지도제 하에 놓여있다는 말이다. 「브레즈네프」는 「브레즈네프」이지 「스탈린」이 될 수 없었다.
소련 공산당의 고위 간부 가운데는 「스탈린」이 신던 신발을 스스로가 신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틀림없으나 내가 알기로는 「스탈린」의 신발을 신을 수 있는 적격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현 소련 정부는 「스탈린」시대의 소련 정부가 아니다.

<맹주의 역할 상실>
소련 정부가 작년에 생각해낸 것은 겨우 소련 혁명제 50주년에 관한 것이었고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야 「레닌」탄생 1백년제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의 제국을 잃어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는 나라가 있다고 치자. 소련은 아직은 그들의 제국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으나 소련 공산당은 대국제공산주의운동의 맹주로서의 역할과 소련 내부에 있어서의 인정된 권위로서의 역할을 상실하였다.
「브레즈네프」는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알고 있다. 「브레즈네프」 일파는 「스탈린」방식이 아니라 흐루시초프의 수법을 보며 현상 유지의 정책에 집착하고 있다. 빛깔이나 빛나는 경험주의나 그때 그때의 비전도 없는 그런 현상 유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마비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의 중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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