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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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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월의 기쁨중의 하나는 연하장을 보는 것이다. 연하장은 허례라고 타박을 받기는 하지만, 딱이 그렇지는 않다. 허례는 낮선 사랑이 유권자에게 별안간 생각이나 났다는 듯이 1년에 한번씩 던겨주는 연하장 같은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연하장일수록 우표는 삐뚜름히 붙었거나 「요금 별납」의 도장이 『꽝!』하고 눌려있다. 정월도 없고, 반가움이 있을리 없다.
세상이 각박할수록 모든 일들은 분별없이 사무적으로 처리되며, 인간의 훈훈한 정도 드물어 간다.
그러 격조했던 친구나 지기의 근황이 연하장에 실려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편지 쓰기를 지독히 싫어하는 친구에겐 연하장이 여간한 고마움이 아닐 것이다. 인쇄물로 그것을 대신할 수 있으니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속된 인쇄물이나마 그 한모퉁이에 따뜻한 글씨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 보내는 것은 주는 편도, 받는 편도 모두 흐뭇하다.
연하장을 정리하다보면 주소록을 작성하는 데도 긴요하게 쓰인다. 한 사람 뿐의 근황이 아니고, 가족의 사진까지도 집어넣은 연하장이 있는 것이다. 이국에서 소식이 끊어졌던 친구가 불쑥 이맘때면 이국의 풍취가 담긴 연하장을 보내온다. 오랜만에 친구의 주소를 알게 되는 기쁨 또한 크다. 『금년엔 「라면」이라도…』하는 농담을 절로 미소를 자아낸다. 『어어! 이 친구는 여태 총각이었나』 새삼 놀란다.
세계 유명인의 연하장 중에 특히 인상적인 것은 독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헤르만·헤세」의 연하장. 그는 엷은 하늘빛과 엷은 녹색과. 때로는 연노란색을 은은하게 뭉갠 수채화를 손수 그려서 연하장을 만들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독일의 「콘스탄스」호 풍경은 그럴 수 없이 아름답고 향수에 젖게 한다. 그는 때매 「스위스」 수도 「베른」 부근에 있는 화가 「베르디」의 별장을 빌어 살며 그런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연하장의 의미는 그처럼 따뜻한 인정을 담아 보내는 정표인 것이다.
우리의 각박한 생활에 언제 한유하게 앉아서 연하장을 만지고 있을 겨를은 없다. 그러나 1년에 한차례, 그것은 흐뭇한 자신의 일에 매몰되는 경우이고 보면 과히 지나친 시간의 낭비도 아닌 것 같다.
「분수대」자의 게으른 연하장은 무엇으로나 대신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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