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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김진의 시시각각

민주당, 천정배 잊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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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민주당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사퇴하지 않으면 탄핵을 검토하겠단다. 국정원 댓글 수사에서 황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부당하게 행사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검찰은 원세훈 국정원장에 대해 선거법 적용과 구속영장 청구를 주장했다. 황 장관은 증거 보강과 법리 재검토를 지시했다. 결론적으로 선거법은 적용하되 불구속하는 것으로 됐다. 민주당은 이 부분을 들어 황 장관을 규탄한다. 이런 공세는 민주당의 자기 모순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5년 10월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친북 언행으로 사법 처리됐다.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 한·미 동맹은 반민족적·반통일적이다” “맥아더는 분단을 주도하고 강제한 장본인이다. 그의 동상을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들이다. 검찰은 이런 발언들이 주한미군 철수 운동이나 맥아더 동상 습격에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소속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그는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강조했다. 하지만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어도 사안이 중하거나 피의자가 반성하지 않으면 구속하는 게 당시 관행이었다. 천 장관의 지휘권은 정치·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김종빈 검찰총장은 지휘권 발동에 반발해 사표를 던졌다.

 강정구 사건에 비하면 국정원 댓글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더 필요한 것이다. 우선 선거법을 적용하려면 선거에 개입할 확실한 의지가 입증되어야 한다. 검찰은 나름대로 증거를 제시했다. 하지만 원 원장은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이 있다고 반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다 확실한 판단을 위해 검찰의 총책임자가 보강수사를 지휘하는 건 오히려 필요한 일 아닌가.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법처리에 법무장관이 왜 침묵해야 하나. 기업에 비유하면 중요한 투자 건에 CEO가 결정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구속 여부도 마찬가지다. 8년 전 천 장관은 강 교수의 불구속을 주장했다. 이번에는 그보다 몇 배 더 불구속을 검토할 이유가 있다. 부족하고 허물이 많지만 그래도 국정원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다. 그런 기관의 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문제는 최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불쑥 청구했다가 기각이라도 되면 국정원의 위상은 어찌 될까. 그런 정보기관이 미국이나 중국·북한에 어떻게 보이겠는가.

 이 나라 정보기관의 역사는 치욕적인 잘못으로 가득하다. 박정희 때 정보부장은 대통령을 죽였다. 전두환 정권의 안기부는 남편에게 피살된 여인을 북한 간첩으로 조작했다. 김영삼의 안기부는 대통령 비자금 수천억원을 정보부 계좌에 숨겨주었다. 김대중의 국정원은 대규모로 민간인을 도청해 원장 2명이 감옥에 갔다. 노무현의 국정원장은 국민이 탈레반에게 납치된 부끄러운 현장에 나타나 웃으면서 떠들썩한 개인홍보를 벌였다.

 이번 댓글 사건도 창피한 일이다. 정보기관은 그늘에서 일하고 무명(無名)으로 헌신해야 한다. 그런 정보기관이 “나 여기 있소”하고 요란하게 움직였다. 이스라엘 모사드 같은 정보기관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보기관과 관련된 사건만 터지면 무조건 과도하게 공격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정보기관이 너무 심하게 다치면 국가안보가 흔들린다. 사법의 칼로 국정원을 개혁하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칼은 정확하고 정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법무장관과 검찰 수사팀이 논쟁을 벌인 건 바람직한 것일 수 있다.

 앞으로 법원 판단이 남아있다. 사회는 차분하게 기다리면 된다. 황 장관의 수사지휘와 검찰의 응수는 성숙으로 가는 진통이 아닐까. 민주당이 장관 탄핵 운운하는 건 스스로 부정하는 거다. 천정배의 기억을 지우는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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