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동양적「이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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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발표하지않는 작곡가』로유명한 이성재씨가 드디어 오랜 침묵을 깨뜨리고 지난22일국립극장에서 첫번째 발표회를 열어 악단의 관심을 모았다. 첫번의 서울현악4중주단에의해 연주된『현악4중주곡』은 직선과 점의 대결이라고 할까-직선적인 가락이 작은 시차를 두고 혹은 동시에 엇갈리는 가운데줄을 튀기는 날카로운 음향이 끼이는가하면 각군으로 분할되어 서로 응답한다. 단조로운 대로 기법이 깔끔하고 짜임새도지녔다. 음색의 대비와 음형진행에서 간결하고 체계적인 면모를 유지한『주제적 12음과 4개의 피아노곡』역시 충격적인데는 없지만 안정된 구조를보인 작품이라하겠다.
이 곡을 연주한 신수정씨는 멋과 내용과 기교를 겸한 우리악계 굴지의「피아니스트」답다.
3번째의『대금과 가야금을 위한 음악』은 이날중 가장 섬세하고 한국적인 것으로 대금의 가락을 사이에 두고 2개의 가야금이 시종 담담하게 얘기를 나눈다. 담백한 기품과 끈기를 간직한 소품이다. 마지막의『8악기를 위한 이국적인 가면』은 제멋대로 지껄이는듯한 점과 점의 충동에서 무리없는 음향세계를 보이나 단조에 그치고 만듯하다. 요컨대 이작곡가의 음악은 체취는 약하나 자기영토를 갖고있는 이른바 동양적「이미지」의 산물이라할 수 있으리라. 작곡가의 생명은 말할것도없이 뚜렷한 개성에 있다. 그러나 개성이야 어떻든 작곡가가 한 작품을 통일감있게 형성화할수 있느냐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런 점을 참작할때 이번 발표회를 마련한 이성재씨는 빈곤한 우리 작곡계에 한 경지를 이룬 작곡가로 인정받아 좋을것이다.

<김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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