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보고 Now@Here] 駐日미군 이전 '뜨거운 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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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하루 빨리 반환하라." 지난달 27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沖繩)현의 후텐마 미군기지 앞. 쏟아지는 빗발 속에서 50여명이 미군기지 철수 요구 시위를 하고 있었다.

오키나와 중부지역 25개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중부지구노조협의회 소속 회원들로 며칠 전 훈련 중이던 미 해군 항공기의 통신장치가 후텐마 비행장에 떨어진 데 항의하기 위해 모였다.

이 단체의 마쓰다 히로시(松田寬)의장은 "통신장치가 민가에 떨어졌다면 큰 사고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전쟁 후 미군의 통치를 받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된 오키나와의 최대 현안은 미군기지 이전이다.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기지의 넓이는 일본 전체 89개 미군기지 면적 3백13㎢(2001년)의 75%나 된다.

미군.가족.군속 등 4만9천여명이 거주.근무하는 육.해.공.해병대 미군기지 37개가 오키나와 면적의 10%를 차지한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적지 않다.

매년 군용기 추락.무기오발 등 각종 사고가 20~30여건씩 발생하고, 2000년에는 미군 훈련에 의한 12차례의 화재로 임야 1백53만㎡가 불에 탔다.

폐유 유출 등 환경오염사고도 적지 않다. 택시운전사 아사야마 히카루(朝山光)는 "미군 비행장 부근 주민들은 오전 6시부터 훈련을 준비하는 비행기 엔진 소리로 제대로 잠을 못자고, 학교 수업에도 지장이 많다"고 말했다. 미군 관련 범죄 처리 방식도 주민들의 불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오키나와현이 1996년 실시한 '미.일 지위협정 개정 및 미군기지 정비.축소' 주민투표에서 투표자 52만여명 중 91%가 찬성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일본인 8천5백여명의 76%(6천5백여명)가 가입해 있는 '전주류군노동조합'(全駐勞) 오키나와지구도 찬성 입장이다. 도쿠스케 가네시(德助兼次) 위원장은 "비록 우리 직장이지만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반대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난해 한국에서 발생한 '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 전체는 물론 오키나와 주민의 입장에서도 미군기지가 '골칫덩이'라고 보기만은 어렵다. 무엇보다 경제적 도움 때문이다. 특별한 산업이 없는 오키나와의 주요 수입원은 '공공사업.관광.기지'(3K)다. 미군기지에서 나오는 수입은 99년 1천8백여억엔으로 전체 수입의 5%를 차지했다.

본토 내 미군기지는 대부분 국유지이지만 오키나와 기지의 33%는 민간소유다. 이로 인해 약 3만명이 일본 정부로부터 임대료를 받는다. 임대료는 매년 3% 정도 인상돼 99년에는 총임대료 수입(7백4억여엔)이 농림수산업 총생산액(6백31억엔)을 훌쩍 넘었다.

일본인 8천5백여명이 근무하는 미군기지는 현 공공기관(1만5천여명)에 이어 둘째로 큰 직장이다.'전주류군노조'에 따르면 근무조건은 정년 60세, 월평균 임금(기본급.수당) 31만엔, 보너스 연간 4백60% 정도. 괜찮은 조건인 데다 안정적이어서 젊은층에 인기가 매우 높다. 미 해병대가 2001년 2백31명을 모집했을 때는 2만1천여명이나 몰려 들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주민들의 철수 요구도 과거보다 강도가 약해지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이 오키나와 반환 30주년이던 지난해 5월 오키나와 주민 8백7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87%가 철수에 찬성하면서도 '단계적 철수'(69%)가 '전면철수'(18%)를 압도했다.

10년 전에 비해 '단계적 철수'는 4%포인트 증가하고, '전면철수'는 3%포인트 줄었다. 특히 20대 가운데 20%는 미군기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마치다 마사루(町田優) 오키나와현청 기지대책실 주간은 "단계적으로 미군기지를 축소하면서 관광.정보기술(IT) 등 대체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이 현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의 뜻대로 되기엔 걸림돌이 너무나 많다. 최근엔 북핵 위기로 인해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안보 차원에서 동맹국인 미국을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다.

현정부나 철수 요구 단체들은 "미군기지 철수에 맞춰 중앙정부 재정을 대폭 오키나와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적자에 허덕이는 일본 정부로서도 한계가 많아 미군기지 문제는 장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day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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