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재현 … 또 하나의 명작 감상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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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프티 팔레의 크리스토프 르히보 관장은 “그림은 속에 들어갈 수도, 그 뒤를 볼 수도 없다. 명화의 디지털 재현이 조각보다 회화에서 더 힘이 센 이유”라고 말했다. 르히보 관장 뒤 작품은 유재흥의 ‘일루전 재발견’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프티 팔레는 파리의 시립미술관이다. ‘돌 깨는 사람’으로 유명한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연간 30만 관람객이 다녀가는 이 미술관에서는 2010년 새로운 형식의 전시 ‘폭로(r<00E9>v<00E9>lation)’를 기획했다. 다 빈치·렘브란트·반 고흐 등의 명작을 고해상도로 근접 촬영해 상영했다. 액자에 든 그림 대신 대사 없는 2분 이내의 영상을 모니터로 보여줬다. 전시 한 달 간 6만 관객이 찾으며 화제가 됐다.

 이 전시의 첫 해외 나들이인 ‘시크릿 뮤지엄(Secret Museum)’이 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시작됐다. 개막을 맞아 방한한 프티팔레 크리스토프 르히보(50) 관장을 11일 만났다.

 디지털 전시가 명화의 권위를 훼손하지는 않을까. 르히보 관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고대 그리스 조각 상당수는 원작이 망실돼 복제품을 통해 그 수준을 짐작할 뿐이다. 이처럼 명화 복제는 오래된 문화다. 명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훼손되고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점에서 이를 디지털로 남겨 두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 논란이 있었을 법하다.

 “처음엔 당연히 말이 나왔다. ‘이것은 스캔들이다’ ‘진짜 작품도 없는 전시를 왜 시도하냐’ ‘원작의 권위를 훼손할 수도 있다’ 등의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일단 본 모습이 공개되자 달라졌다.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됐다’ ‘보는 시각을 넓혀줬다’ ‘원작을 보러 가고 싶게 만들었다’ 등의 호평이 잇따랐다.”

 - 전시작 대부분은 루브르·오르세·프티 팔레 등 파리의 미술관 소장품이다. 파리 사람들은 언제든 원작을 보러 시내의 미술관을 찾아갈 수 있겠지만, 서울의 관객들은 입장이 다른데.

 “바로 그 때문에 한국서 전시가 열리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전시를 본 한국의 관객들이 후에 유럽에 가서 원작을 만날 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잠깐 가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감동을 얻게 될 거다.”

 - 원작의 감동을 넘어설 수 있을까.

 “ 사실 동시대인이라면 그가 어느 나라에 있든 과거의 예술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모르고 봤을 때와 알고 봤을 때가 다르듯, 회화는 볼 때마다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이 전시가 이끌고자 하는 점도 그것이다.”

 르히보 관장은 “이 전시는 한국산 ”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에서 첫 선을 보인 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귀향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 무슨 뜻인가.

 “프티 팔레는 2010년 가을 ‘문화 유산의 날’을 맞아 참신한 기획을 고민하던 중 삼성전자로부터 ‘명화의 디지털 전시’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미술관을 외면하는 젊은 층의 발길을 잡을 수 있는 발랄한 전시가 될 거라 여겨 손을 잡았다.”

 -어떻게 작업했나.

 “명작 선정과 콘텐트 구성은 미술관이, 이를 디지털로 제작해 모니터로 구현하는 과정은 삼성전자가 맡았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 열린다. 한국 전시엔 미술가 레이박·유재흥·이이남·전가영·하석준씨와 미술품 복원가 김주삼씨도 참여했다. 성인 1만2000원, 중고생 1만원. 02-580-1300.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프티 팔레(Petit Palais)= 1900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 때 지어진 건축물.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대·중세의 회화 및 조각 작품과 18~19세기 프랑스 회화가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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