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의정서 처리로 맞선 여야기상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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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 각 상임위원회가 예산안의 예심을 대충 마쳐가면서 여야당은 연 나흘째 예산심의 일정에 대한 정치적인 절충을 벌였으나 12일까지 아무런 의견접근을 보지 못했다.
신민당은 표면상 단지 세법개정안의 미처리로 인해 세입을 확정지을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예산의 종합심의 착수에 반대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여야합의의정서의 처리에 대한 공화당측 사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신민당은 지난 8일 김영삼의원이 새 원내총무로 들어서면서 ⓛ의정서 처리의 사전보장 ②세법개정선행 ③국정감사보고서 처리선행이라는 몇 가지 원칙을 예산심의 지침으로 삼았던 것. 그러나 12일 열린 원내대책위원회에서 일부 의원들은『예산과 직접 관계없는 의정서처리 문제를 예산안 심의의 조건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대외적으로 명분이 서지 않으니까 공식적으로는 세법개정을 통한 세부담경감을 투쟁목표로 걸고 의정서처리의 실질적인 효는 그 과정에서 거두도록 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예산·의정서결부>
이 얘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민당이 표면상 예산심의 지침이나 투쟁목표를 어디에 두든 간에 합의의정서를 예산과 결부시킬 생각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실상 합의의정서 대목 중 6·8선거 부정특별조사문제는 시의를 놓쳤고 그 대목이 시원스럽게 종결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부정조사 특조위법제정특위』가 어떠한 결말이든 낼 것은 틀림없다. 또『보장입법특위』도 몇 가지 법개정 안을 만들어낼 것도 틀림없다. 그러나 그 두 가지 결과가 합의의정서를 충실히 따르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봐야한다.

<당내사정도 겹쳐>
만족한 결말을 기대하기 어려운 의정서처리문제를 예산심의에 연결시키는 신민당에는 그런 대로의 고충이 있다.
첫째는 의정서처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성의를 당내일부(특히 원외) 불만세력에 보아야만 명년에 있을 전당대회를 순조로이 넘길 수 있다는 사정이며, 둘째는 불만족스러우나마 의정서에서 약속 받은 사항을 관철하려면 예산심의와 연결시키지 않고는 도저히 공화당측의 성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정이다.
예산심의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내세워진 것 중 세법개정도 만만치 않다.
재경위의 세법심의 7인 소위는 신민당이 제안한 세법개정안을 토대로 절충을 끝내어 ⓛ갑종근로소득세의 누진율을 조정하고 ②사업소득세의 면세점을 인상 ③가산세를 완화하는 선에서 매듭을 짓기로 했다.
당초 신민당이 제안한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세수는 약 65억원이 줄게되고 7인 소위의 절충결과가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약 30억원이 줄게된다.

<여당재량한계에>
그러나 이 세수 30억원의 삭감은 여야의 양해나 합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
최종적으로는 행정부 고위층의 양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최종의 양해가 이루어진다면 별문제지만 그것이 이룩되지 않는다면 공화당은 신민당쪽에 아무런 명분이 설 수 없으며 예산심의도 암초에 결린다고 보아야한다.
공화·신민양당은 현재 구성되어 있는 예결특별위원회가 명년 예산안을 다룰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 견해가 갈려있다. 그러나 이 시비는 지엽적인 것이다. 크게는 세법개정의 범위와 의정서처리라는 두개의 큰 암초가 예산안심의에 가로 놓여있는 것이다.

<여당은 관심 없고>
공화당은 이미 의정서 처리와 예산은 전혀 별개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의정서는 두 특별위원회에서 처리할 것이라는 얘기다. 또 세법개정문제에대해서는 명백한 개정계획 범위를 스스로 밝히지 못하는 채 『예산과 병행심의 해도 무방할 것』이라는 무성의한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어느 시기엔 강행>
납세자의 세부담을 얼마만큼 경감해야하고 정부의 세수입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대해 공화당은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오로지 예산안의 통과만이 목표처럼 되어있다. 그리하여 어느 시기까지 신민당의 협조를 기다리다가 그것이 안되면 신민당을 제쳐놓고 예산심의를 강행할 속셈이 서있는 것이다.
공화당은 합법적인 심의강행을 위해 십오구악부의 동조를 기대하고 있는데 십오구측이 현재로서는 선뜻 동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만이 공화당의 조그만 고민일 뿐이다.

<십오구도 비협조>
십오구는 양달승의원선서문제, 특위에·십오구의원을 참여시키는 문제에 공화당이 성의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예산심의에 협조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그러나 예산심의 기간 막바지에 이르면 결국 십오구는 공화당과 발을 맞추지 않겠느냐는 것이 공화당간부들의 생각이며 또 많은 국외자의 관측인 것이다.
예산과 관계없는 정치적 쟁점을 끌어들인 野당의 무리한 요구와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여당의 무성의한 반응, 이들은 모두 예산심의「보이코트」아니면 단독심의 강행이라는 자랑스럽지 못한『전래의 길』을 벌써부터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예산심의의 기상은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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