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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프랜시스 베이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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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조지 다이어에 대한 세 개의 습작, 1969, 각 36.0×30.5㎝, 덴마크 루이지애나 근대미술관 소장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1963년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92)의 집에 좀도둑이 들었다. 유별난 집주인은 조지 다이어라는 이름의 이 좀도둑과 연인 관계가 됐다. 다이어는 화가의 동성 애인이자 모델, 뮤즈가 됐다. 베이컨은 그의 초상화를 즐겨 그렸다. 자아도취적 포즈의 알몸 초상화, 둘 사이의 애증을 암시하듯 형편없이 얼굴이 뭉개진 초상화 등이다. 왼쪽 그림 ‘조지 다이어에 대한 세 개의 습작’(1969)도 그 하나다.

 삼면화(triptych)는 기독교 성화에서 삼위일체의 편재(遍在)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돼온 형식이다. 베이컨은 이걸 비틀어 삼면화 속에 인간을 고깃덩어리처럼 그로테스크하게 그렸다. 그림 속 다이어의 이지러진 얼굴마다 총알이 관통하기라도 한 듯 한가운데 검은 점이 박혀 있다. 베이컨은 인물을 닮게 그리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생전의 인터뷰에서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외줄 타기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림이 그려지기 전해인 68년 다이어는 자살을 시도했다. 71년 10월, 파리 그랑팔레에서 베이컨의 회고전이 열리기 전날 밤 같이 쓰던 호텔방에서 목숨을 끊었다. 그리하여 이 일그러진 그림은 다이어의 죽음을 암시하는 전조가 됐다.

 보기에 절대 편치 않은 이 그림이 지난 석 달간 도쿄 곳곳에, 그리고 일본의 각종 미디어에 등장했다.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지난달 마친 ‘프랜시스 베이컨’전의 대표작으로 전시 안내 배너, 티켓, 도록 표지 등에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어느 비 오는 평일 오전, 베이컨 사후 첫 아시아 회고전이 열린 이 미술관에 갔다. 궂은 날씨에도 전시장엔 사람이 많았고, 그럼에도 아주 고요했다. 인간의 고깃덩이 같은 심연을 탐구하다 간 이 음울한 화가의 그림에 몰두하는 이들의 심연엔 무엇이 있을까. 혼자 온 양복 차림의 장년 야스오카 마사후미(61)는 “근처의 회사원이지만 이 미술관에 온 것은 두 번째”라고 했다. 그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화가 인쇄된 전시 티켓을 들어 보이며 “신문에 실린 이 그림을 보고 실물은 어떨까 궁금했다. 그로테스크하지만 인간의 본질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폭력과 광기의 시대, ‘산다는 것’에 대해 더욱 집착하면서 이런 그림을 그렸던 독학의 화가 베이컨. 그는 오늘날 세계에서 그림값이 가장 비싼 작가 중 하나다. ‘조지 다이어의 두상’(1967)은 2008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370만 파운드(약 242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그의 그림이 새삼 각광받는 것은 우리네 삶이 악과 폭력, 죽음에 가까워서일까.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