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든골로 이탈리아 격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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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을 제치고 헤딩으로 결승 골을 넣은 안정환이 환호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 우승후보 중 하나였던 이탈리아에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한국인들이 도시 전체를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연장전 종료를 몇분 앞두고 터진 골로 한국은 막강 전력의 이탈리아에 믿을 수 없는 2-1승리를 거두고 월드컵 8강에 진출했다.

이번 대회 16강전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경기의 하나였던 이 경기에서 경기 시작 116분만에 나온 결승 헤딩 골든골로 안정환은 자신의 실책을 만회했고, 월드컵 3회 우승 전력의 이탈리아는 고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한국은 축구계 최대 행사인 월드컵 본선에 5번 진출하고도 단 한번도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다.

이 경기는 공동 개최국 일본이 미야기에서 터키에게 1-0으로 진 몇시간 뒤에 바로 열렸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나온 페널티킥을 실축했던 안정환은 승부차기로 갈것 같았던 상황에서 승리를 확정짓는 골을 넣고 높이 뛰어올랐다. 이탈리아는 전반 선취득점 이후 승자가 되는 듯 했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3만 9천명의 '붉은 악마' 응원단은 후반 종료 2분을 남겨두고 설기현이 크리스티얀 파누치의 실수를 이용해 골문 오른쪽 아래 구석으로 공을 밀어넣어 동점골을 터뜨리자 기뻐 날뛰었다.

한국의 이번 승리는 연장전에서 프란체스코 토티가 퇴장당한 이탈리아로선 고통 그 자체였다. 이탈리아팀은 2년 전 유럽선수권대회 결승 후반 막판에 동점골을 기록하고도 역시 골든골을 넣은 프랑스에게 패배한 바 있다.

경기 시작 후 불과 18분 만에 크리스티얀 비에리가 왼쪽 코너에서 날아온 공을 연결해 골문을 가르고 헤딩골을 넣었을 때 만해도 이탈리아가 승리하는 것 같았다.

한국은 전반 5분 안정환의 페널티킥 실축으로 비탄에 빠졌다. 이탈리아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은 오른쪽으로 몸을 던지며 안정환의 킥을 막아냈다. 페루자 소속의 안정환은 이탈리아에서 뛰고있는 유일한 한국선수이다.

이탈리아는 1994년 브라질과의 결승전을 포함해 역대 월드컵에서 3차례나 승부차기로 패했었다.

이번 패배는 이탈리아 관리들의 입맛을 씁쓸하게 했고, 이들은 막후의 보이지 않는 세력이 한국이 2-1 승리에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경기 전반 득점한 크리스티안 비에리(왼쪽)가 마크 율리아노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단장 라팰레 라누치는 이탈리아 RAI 국영 방송에 "한국은 정말 강한 나라다. 한국인들은 분명히 무슨 조치를 취했다. 나는 내 평생에 그같은 저질 심판은 본 적이 없다"며 "심판은 수치스러웠다. 코미디 영화 한 장면 같았다"고 전했다.

라누치는 경기 종료 후 에콰도르의 바이론 모레노 주심에게 항의했느냐는 질문에 "탈의실에서 심판에게 항의했다. 우리는 화나고 실망했다. 이탈리아 같은 나라가 이렇게 치욕을 당하는 건 불공정하다"고 답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한국이 역습을 허용하면서 비에리가 이탈리아에게 승리를 안길 기회를 얻었지만 공은 골문 근처를 살짝 빗겨나가면서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말았다.

한국이 지배한 연장전에서 프란체스코 토티는 페널티 에이리어에서 수비의 차단에 넘어졌지만 심판은 이탈리아가 기대했던 페널티킥을 선언하는 대신 그에게 2번째 경고를 선언, 토티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퇴장을 당했다.

한국은 8강에 진출과 함께 공동 개최국이자 숙적인 일본에 대한 승리를 간절히 바랬다. 일본은 이날 먼저 벌어진 경기에서 패했다.

한국팀은 조별예선 경기를 통해 보여준 활발한 경기를 재현하진 못했지만 순조로운 시작의 기회를 얻었다.

에콰도르의 바이론 모레노 주심은 코너킥 포지션을 차지하려고 서로 밀던 중 파투치가 설기현을 끌어 당겼다는 판정을 내렸다.

동점골을 넣은 한국의 설기현(왼쪽)을 이영표가 끌어안고 있다.
안정환은 골기퍼 부폰의 오른쪽으로 낮고 강한 페널티킥을 날렸지만 덩치 큰 부폰은 몸을 잘 낮춰 공을 안전하게 막아냈다.

비에리는 13분 후 상대팀 밀착수비를 피해 골 포스트 근처에서 간판 골잡이다운 헤딩으로 골문을 열었다. 이번 골로 그의 월드컵 본선 득점 합계는 9점에 이르러 이탈리아 최고기록과 동률이 됐다.

페널티킥 실축에 이탈리아가 넣은 선제골 이후 대전 월드컵 경기장의 붉은 티를 입은 팬들의 계속되는 함성과 북소리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한국선수들은 수세에 몰린 것 같았다.

이탈리아 주장 파울로 말디니는 이탈리아의 수비 라인을 멋지게 정렬했고 조반디 트라파토니 감독이 이끈 이탈리아팀은 부상당한 알렉산드로 네스타와 출전 정지받은 파비오 카나바로가 없어도 거의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한국팀 최대의 호기는 후반 초 한국선수들이 빠른 프리킥으로 이탈리아의 중앙수비수들을 놀라게 한 다음 안정환이 이 프리킥을 연결해 비스듬히 슛을 날리면서 찾아왔다.

이탈리아의 좌측수비 프란체스코 코코는 전반 종료 휴 휴식 시간 바로 직전 왼쪽 눈이 심하게 패이면서 머리를 붕대로 감은 채 대부분의 경기시간을 뛰었다. 코코는 팀 동료 선수 다미아노 토마시와 코너를 수비하러 달려가던 중 우연히 그의 팔꿈치에 얼굴을 맞았다.

조별 예선 경기에서 스릴 넘치는 경기를 펼치며 전국의 수백만 축구팬들을 열광시킨 한국 선수들은 이번 대회 이전까지 한번도 8강까지 진출한 적이 없다.

Taejon, Korea (CNN) / 김내은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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