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청소년들 평양 관광 … 체제 선전용인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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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을 탈북한 뒤 라오스 공안 당국에 억류됐다 강제 북송된 9명의 청소년들이 처벌을 받지 않고 평양 인근에서 단체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11일 파악됐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이들이 평양 순안공항 근처의 순안초대소에 머물며 생활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며 “최근에는 대성산 유원지와 능라유원지 등 평양에 있는 놀이공원을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대성산 유원지와 능라유원지는 지난해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김정은 국방위 1위원장이 방문해 준공식을 하는 등 평양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다른 대북 소식통도 “청소년들이 놀이공원을 비롯해 평양에서 새로 건설하고 있는 만수대 거리 등을 돌아봤다”며 “북한 당국자들의 안내로 사진도 촬영한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통상 탈북을 하다 체포된 사람들은 조사 과정에서 심한 고초를 당하거나 집단 시설에 수용돼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곤 했다. 그러나 소식통들의 전언대로라면 북한 당국의 9명 탈북 청소년들에 대한 태도는 매우 이례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당국이 김정은 들어 새로 건설된 놀이공원과 평양 시가지 등으로 청소년을 데려간 건, 변화된 북한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며 “기자회견이나 내부 강연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실토하도록 하려는 게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북한이 체제 선전에 이들을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6월 탈북했다 재입북한 박정숙씨를 비롯해 11월에는 김광혁씨 부부의 기자회견을 통해 체제 선전과 결속을 도모했다. 이들은 ‘탈북해 중국이나 한국에서 생활해보니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따라서 이들 탈북 청소년들도 조만간 기자회견을 하거나 북한 관영 언론을 통해 북한 사회에서의 생활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를 의식한 행동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익명을 원한 외교안보 당국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국제사회에서 탈북 청소년들의 신변 보장을 지속적으로 북한에 요구하고 있다”며 “이를 의식하고 청소년들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 평양에서 잘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11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선 라오스의 탈북 청소년 강제 송환을 질타하는 여야 의원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민주당 심재권 의원은 “지난해 말, 미 국무부가 라오스를 인신매매국으로 발표한 뒤 라오스 당국이 원 국적지로 송환을 강화한 만큼 탈북자 대책을 당연히 세웠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탈북자 출신인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도 “강제 북송되는 현실을 보고도 우리는 동포들을 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남북 당국회담을 통해 이들의 신변 안전을 확인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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