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달 말 한·중 정상회담으로 입지 강화 후 북한과 본격 협상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향후 남북간 회담이 열리면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의도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북한이 전격 회담을 제의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러시아 태생의 미국인 알렉산드르 만수로프(46·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객원연구원·사진) 박사는 최근 북한의 대화 제안과 관련,“한국과 미국·중국 등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북한이 회담장에 끌려 나온 게 아니라 철저히 북한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회담”이라고 지적했다.

만수로프 박사는 12일 예정됐던 서울 남북 당국회담이 양측 이견으로 무산되기 몇 시간 전인, 11일 오전 서울 신교동 동아시아재단에서 강연한 뒤 기자들을 만났다. 만수로프 박사는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연구소(MGIMO)에서 국제관계 석사학위를, 미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말 북한 김일성대에서 한국학을 수료한 뒤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한 이론·실전 겸비 한반도 전문가다.

 이날 ‘김정은의 공격 정신과 지난 봄 북한의 심리전 교훈들’을 주제로 강연한 만수로프 박사는 “북한은 회담을 통해 개성공단 운영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에 따른 한국 정부의 대북 제재인) 5·24 조치 폐지를 노리고 있다”며 “경제 재건 등을 위해 남한의 돈을 원하면서도 한국 정부가 원하는 북핵 폐기 및 인권 개선 등에 대해선 논의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남북 회담을 제의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정부는 회담에 나서려면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대한) 사과와 해당 사건 조사, 재발 방지책 등 3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했다”며 “그런데 북한이 회담을 제의하자마자 남한 정부는 3가지 조건을 내팽개치고 덥석 회담에 응하는 걸 보고 실망했다”고 꼬집었다.

 만수로프 박사는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한에서는 ‘최후 승리를 위하여’ ‘마식령 속도(과업을 단숨에 해치우자는 운동)’ ‘공격 정신’이라는 이념적 구호가 부상하고 있다”며 “북한의 전격 회담 제의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공격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은의 ‘공격 정신’은 첫째, 모든 방면에서의 공격을 통해 전략적 놀라움을 유발하고 둘째, 단숨에 과업을 실천해 한국·미국 등을 자신들의 게임에 끌어들이며 셋째, 협상 대상을 남한뿐 아니라 중국·일본으로 다양화하고 넷째, 무기의 경량화·기동화·정밀화·다중화로 공격 수단을 다변화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 정부는 서울 회담에서 성급하게 성과를 얻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달 하순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면 한국의 입지가 크게 강화되는 만큼 이후 북한과 본격적으로 협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정재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