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서로 격이 맞아야 신뢰 싹터" … 북측에 대표 '체급 조정' 우회적 압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남북 당국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외교안보장관 회의를 소집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세 번째 열리는 회의다. 첫 회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이 고조됐던 지난 4월 2일 열렸고, 같은 달 26일 개성공단 사태와 관련해 소집됐었다. 오후 3시40분부터 1시간30분가량 열린 이 회의에선 윤병세(외교부)·류길재(통일부)·김관진(국방부) 장관, 남재준 국정원장,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참석했다.

 남북 당국회담은 물론 미·중 정상회담과 한반도 정세 변화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회의 후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안정을 정착시켜 나가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잘 가동되도록 해야 된다는 점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진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섣불리 얘기하면 회담 분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시작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흐름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외교안보장관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남북 당국회담에 나올 북측 대표단의 ‘격 (格)’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남북 간에 회담을 진행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서로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서로 격이 맞아야 신뢰가 싹트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관계자는 “격은 서로 간 반드시 지켜야 할, 회의에 임하는 기본적인 자세”라며 “그 부분에 있어선 정말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국제표준)가 적용돼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저쪽에선 국장이 나오는데 우리는 장관을 나가라고 한 지금까지의 관행은 잘못”이라며 “새롭게 남북관계의 발전을 (국민이) 여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당국자 회담에 참여하는 사람의 격을 맞추는 것은 가장 기본”이라고도 했다. “북한이 워싱턴에 가서 누군가와 대화할 때, 중국에 가서 누군가 만나서 협상을 할 때 늘 하는 것이 국제적인 스탠더드에 맞추는 일인데 남한과 할 때 그러한 격을 깨는 건 신뢰를 깨는 것”이라고 예를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장관급회담에서 북한 대표의 ‘체급’이 우리보다 낮았던 관례부터 깨겠다는 것이 청와대의 생각이다. 아직 북측이 대표단 명단을 통보하지 않은 만큼 11일까지 우회적으로 압박을 계속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며 “지난주에 북한이 우리가 제안했던 당국 간 회담을 수용했다”면서 “앞으로 남북 간에 회담이 발전적으로 잘 진행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신뢰 프로세스 거듭 강조한 박 대통령=박 대통령은 이날 외교안보장관 회의 전 라스무센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이사회 의장(전 덴마크 총리)을 접견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덴마크는 항상 우리의 믿음직한 우방이었다”며 “북한의 핵실험 도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발표해 주셔서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남북 당국) 대화를 통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해서 남북 공동발전으로 이어지도록 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2009~2011년 총리를 지낸 라스무센 의장은 지난 2월 25일 박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참석했었다.

신용호·허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